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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Jan 06. 2021

#11 징징거리기만 하는 아이

이럴 때 어쩌죠? - 사례 (1)

민호는 친구들 앞에서 엄마에게 “엄마~”, “엄마~”하며 발을 동동 거리고만 있다. 옆에 있는 친구들도 그런 민호를 보며 의아할 법한데, 친구들은 늘상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다.
민호가 이럴 때마다 엄마는 한편 답답하기도 하고, 주변 엄마들 보기에도 민망할 때가 많다. 민호의 이런 행동은 주로, 엄마에게 SOS를 치는 신호라는 걸 엄마는 알기 때문에 오늘도 난감하다.
민호는 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다. 민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발을 동동거리는 것뿐이다. 엄마는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에는 민호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주고 민호의 바람을 들어주어야만 끝이 난다는 걸 안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싶다는 민호의 마음을 엄마가 눈치로 알아챈 다음, 친구들에게 “오늘 우리 집에서 민호랑 같이 놀래?”라고 하자 이 징징거림은 끝났다. 이런 민호의 징징거림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달라질 줄 알았던 엄마의 기대는 오늘도 무참히 깨졌다. 언제까지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대신해줘야 하는 건지 앞이 캄캄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민호는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입니다. 평소 민호엄마는 민호랑 잘 놀아주진 못해도 민호가 하자는 건 다 해주는 편이었죠.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하는 민호를 위해 민호네 반 친구들의 엄마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집에 초대해서 놀게 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민호엄마도 같은 반 친구들의 엄마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평소 같이 놀아주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민호엄마는 민호 대신 친구를 만들어주는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함으로써 엄마가 직접 놀이 상대가 되지 못하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겁니다. 재미없고 잘 놀 줄 모르는 자신과 노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는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매번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조차 민호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엄마만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엄마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닌데 왜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는 말을 하지 못할까 하고 말이죠.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민호는 평상시 친척들과 있을 때도 갑자기 엄마 옆에 다가와서 귓속말로 “엄마 나 저거 먹어도 돼?”하고 묻는 겁니다. 엄마는 “고모한테 가서, 저 이거 먹어도 돼요? 하고 물어봐.”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근데 민호는 고모한테 가서 묻지도 못하고 엄마 옷자락을 붙들며 “엄마가 먹어도 되냐고 물어봐.”라고 하는 겁니다. 답답한 엄마가 “그냥 가서 저 이거 먹어도 돼요? 하면 된다니까!”하고 얘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고모가 “민호야~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어. 다른 것도 꺼내서 먹고.” 그랬는데도 민호는 여전히 엄마만 붙들고 있는 겁니다. 유치원생이면 이해할만하지만 초등학생이나 됐는데 이런 것도 못 물어보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민호엄마는 민호가 덩치 값도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민호는 왜 이런 작은 일조차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민호는 평소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뭐든지 잘하는 만능이라는 생각을 했죠. 자신이 하면 잘 안 되는 것도 엄마는 척척 해냈습니다. 삐뚤빼뚤 자신의 글씨보다 엄마 글씨가 훨씬 멋졌고, 가위질도 엄마는 완벽하게 했습니다. 자신이 잘 못하는 일을 엄마는 쉽게 쓱싹 해냈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민호는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처럼 될 수 없었고 자신이 하느니 엄마가 자기 대신하는 게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상시 이런 생각을 품고 있던 민호는 매번 엄마에게 부탁을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재빠르게 자신의 요구대로 해주었습니다. 민호가 느끼기에 엄마는 램프의 지니 같았습니다. 소원을 말하기만 하면 지니처럼 나타나 해결해주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엄마가 자꾸 민호에게 화를 내는 겁니다. 예전에는 상냥하게 다 해주던 엄마가 말이죠. 초등학생이 됐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말하지 말고 스스로 하라니,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제껏 자신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제부턴 스스로 하라니. 민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화낼 때마다 민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불안했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제까지 평온했던 민호는 오히려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오히려 초등학생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억지스러운 마음만 키울지도 모르고요. 이런 민호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요? 민호는 자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방법으로 엄마에게 SOS를 친 겁니다. 그 방법이 민호 나이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지만요.  


  민호엄마의 실수를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민호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걸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영역까지 해주었던 겁니다. 소리를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사람에게 말을 해보라고 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먼저 톤 조절부터 해야 할 겁니다. 어떤 정도의 세기와 톤으로 해야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는지 알기 위해서 말이죠. 24개월 전의 애기들을 생각해 보세요. 조용한 곳에서도 엄마에게 큰 소리로 말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어린 애기들은 자신의 소리 정도와 세기, 톤이 어떤지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큰소리로 외치는 겁니다. 


  민호에겐 스스로 해보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합니다. 당장 다른 사람에게 목소리를 내서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해보는 것 말고. 아주 쉬운 것부터 말이죠. 그게 뭘까요? 집에서 혼자서 해볼 수 있을만한 것부터 하는 게 좋습니다. 별거 아닌 일상적인 것부터 말이죠.


  민호 같은 아이들은 평상시에 엄마에게도 자신의 요구를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몸짓으로만 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의 부족한 표현에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자세히 더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엄마는 아이가 말하기도 전부터 아이의 필요와 요구를 알아채서 해주면 안 됩니다. 비록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가 눈치를 챘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엄마에게 필요한 걸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아이에게 “자! 이제 말해봐. 네가 뭘 원하는지.”할 순 없습니다. 민호 같은 아이들에게 표현을 강요하거나 스스로 말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서도 안 되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에게 “엄마한테 할 이야기 있으면 와서 얘기해줘. 안 그럼 엄마는 모르거든.”하고 넌지시 이야기를 해놔야 합니다. 아이가 말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일 때 말이죠. 그러면 아이는 “엄마.... 있잖아.... 사실은....” 이렇게 운을 뗄 수 있습니다. 이때 절대로 재촉해서는 안됩니다. 아이가 끝까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반응만 하셔야 합니다. “어~그래. 이야기해봐. 듣고 있어.”하면서 말이죠.


  답답해서 어떻게 이걸 기다리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보다는 이 기다림이 오히려 수월하다는 걸 인정하실 겁니다.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님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부모가 꿈꾸는 아이의 미래는 자신감 넘치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러더의 모습일 겁니다.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앙앙 울다가 엄마, 아빠를 반복하는 그 과정이 있었기에 아이는 24개월쯤 언어 폭발이 일어난 겁니다. 가르쳐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래.”하고 말썽 피던 3살, “아니야. 이거 내 거야.”하며 고집 피던 5살, 집 여기저기 가위질과 낙서로 엉망을 만들어 놓고도 뭐든지 자신이 해보겠다고 하던 7살. 이 모든 시기가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 주도성을 키우는 중이었다는 걸. 그래서 언어 폭발이 일어났던 그때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을 척척 해내는 아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걸. 이제는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미 이 시기를 놓치셨다면 세컨 찬스를 붙잡으시면 되고, 아직 이 시기를 맞이하기 전이라면 지금이라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마음껏 주시면 됩니다. 우린 이미 늦었어, 하고 절망하시기는 이릅니다. 어느 때고 시작하면 됩니다. 아이는 계속 성장 중이고 아직 결과가 주어지지 않은 과정 위에 놓였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p.s. 제가 사례로 이야기하는 내용은 가상의 인물로 구성한 것이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혹시 오해가 있으실 분들이 있으실까봐 미리 안내드립니다. 실제 인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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