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엄청 내린다. 첫눈이다. 눈송이가 작다가 컸다가 눈발이 약해지다 거세지다 하며 쉬지 않고 내린다. 어제 하루 종일 오더니 밤새 또 왔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역대급으로 많이 쌓여 있다. 90살 먹도록 살면서 이런 눈 처음 봐 하시는 어르신들 생각이 난다.
건넛집 지붕에 쌓인 눈이 떨어지지 않고 흘러내린 상태로 멈추어 있는 모습이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시계 같다. 굵은 눈송이가 하늘마저 채워 빈 곳 없이 눈으로 가득 찬 풍경이 현실을 초월한 듯하기는 하다.
설경이 황홀하지만 이렇게 계속 내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무서워진다. 마당에 나무들이 가지마다 눈을 달고 있다. 나무 모양에 따라 쌓인 모습이 다르기도 하여 어느 나무인지 알겠다. 최근에 소나무 가지치기하기를 잘했다. 전정을 안 했으면 바늘잎 촘촘히 습기 머금어 무거운 눈을 쌓다가 가지가 부러지거나 찢겨나갔을 것이다.
눈 내리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어떤 나무는 몸을 떨며 눈을 좀 털어낸다. 여린 가지들이 더 쉽게 눈을 덜어낸다. 튼튼한 가지는 내리는 눈을 그대로 쌓아둔다. 배롱나무는 가지에 눈을 달고 기울어져 땅에 닿아 있다. 바닥을 버팀대 삼아 견디는 모습이다. 가지가 휘어진 모양에 내 허리가 다 아프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싶을 때 눈을 털고 일어설 것이다. 산의 나무들도 자기의 방식으로 이때다 싶을 때 쌓인 눈을 털어내며 자기 색깔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