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트라우마'의 개념과, 그의 극복에 대해
절망이 아닌 선택
태어난 후 사는 중에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트라우마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트라우마도 있다.
주의하라.
어떤 신비주의나 영적인 무엇, 에너지적인 무엇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개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여러 기질적 경향 중에 '트라우마'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트라우마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그 '타고난 트라우마'를 선명히 통찰하게 되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될뿐더러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러한 기질이 없어지거나 바뀌는 게 아니라
같은 그 기질, 기능, 성향, 경향성이라도
더 이상 트라우마적으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고난 트라우마'를 통찰하는 것은
스스로의 인식적 탐구로도 가능하고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이와의 협력작업으로도 가능하다.
이 통찰을 위한 핵심 관점 중에 하나는 어릴 적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발현되었던 트라우마적 행위가 일정 나이 이상으로 성장한 후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혹은 변형되어 발현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다.(인간에겐 삶의 여러 고민이 있지만 '타고난 트라우마'에 의한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릴 적 행태와 성장(혹은 성인이 된) 후의 행태의
그 연결성, 연관성, 변형성 등을 선연히 보는 순간
'타고난 트라우마'는 그 베일을 벗게 된다.
바로 끝의 시작이다.
//
*주1: '타고난 트라우마'라고 했지만 실제 타고난 경우일 수도 있고, 혹은 아주아주 어린 영유아 때 체험으로 만들어진 트라우마라 마치 타고난 듯이 보이는 경우,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
*주2: 위에서 말한 '통찰' 후에, '타고난 트라우마'가 곧바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빨리 처리될 수도 있고 다소 느리게 처리될 수도 있다. 이것은 '통찰 후의 관성의 처리'라고 명할 수 있다. 통찰을 의식적으로 삶에 적용하는 의도적 노력은 필요하다.
관성의 처리에 시간과 노력이 어느 정도 이상 들 수 있지만, 그러나 가장 큰 희망은 통찰 후에는 드디어 그에 대한 완전한 처리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본인이 의도하면 의도한 만큼 강하고 빠르게.
*주3: '타고난 트라우마'에 대한 유용한 하나의 관점은, 이것을 '우리 마음의 약한 고리'로 보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신체 부위나 몸 안 기관 중에 다소 약하게 태어난 부분이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
다만 마음의 경우는 몸과 달리, 이것이 반드시 '약한' 무엇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도 썼지만 통찰과 그 후의 관성의 처리로 그 경향성 그대로 본연의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몸의 경우와 다르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