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May 07. 2016

붓다가 설정한 '인생은 고(괴로움)' 모델을 넘어

인생이 '삶과 나의 결혼'이라면

- 정말 '인생은 고(苦)'일까?

: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이생과 헤어지기를 싫어할까?


고타마 붓다가 설정한 '인생은 고(괴로움)'의 모델은, 무척 유용하나 사실 좀 삭막한 모델이다.(아마도 그런 설정에는 고타마의 개인적 성향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수행 계열에는 다른 모델도 있다고 한다. '인생은 삶과의 결혼'이라는 모델이다.


여기서는 '나'는 신부이고 '삶'은 신랑이다. 그리고 인생은 이 둘의 결혼 생활인 것이다. 연애 생활이라 해도 된다. 인생은, 멋진 결혼을 완성해 가는 것이 된다.(혹은 내가 신랑이고, 삶이 신부인 것도 가능하겠다)


물론 현실의 결혼은 여러 가지 좋고 나쁘고,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결혼은 그런 게 아니다. 기본적으론 '설렘과 낭만'을 바탕으로 하고, 그리고 사랑과 여러 좋은 것들이 가득 찬 모델이다. '결혼'은 하나의 상징이다.  


붓다의 '인생은 고'의 모델에서는, '삶은 괴로운 것이다'를 전제로 하고 이제 모든 것을 시작한다. 그 해결의 과정도 그에 기반한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수행과 깨달음에 나름 효율적인 모델이다. 근데 여전히 좀 삭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이, 신부인 나와 신랑인 삶과의 알콩달콩한 결혼이라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결혼을 얼마나 설레고 멋지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된다. '애초에 괴로움이니 이 괴로움을 해결해야 한다'가 아닌 것이다. 완전히 다른 모델이다.

(혹시라도 여전히 현실적 결혼을 생각하며, '결혼, 그거 결코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지. 괴롭지 그것도'라고 생각되는 분들은, 그 모델은 붓다의 '인생은 고' 모델이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결혼 모델'은 아님을 다시 한번 유념하자)


여기서 말하는 건, '좋은 결혼, 건강한 결혼, 행복한 결혼'인 것이다. 로맨틱함의 상징인.


삶과 결혼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신랑처럼 삶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함께 기뻐해 주고. 그리고 삶도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을 항상 느끼는 것이다.


삶에게 최선을 다 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맡기고, 어려움도 함께 넘어가고, 서로 의지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죽을 때 같이 죽는.


너무 동화 같고 판타지스러운 것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인생은 고'라는 모델도 엄중히 이야기하면 또한 하나의 설정이자 판타지이지 그게 어떤 절대 사실이나 절대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는 그 외 다른 인생의 모델들도 그 본질적 판타지성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반 농담이지만 다들 저 세상보다는 이 세상을 더 좋아하지 않는가? 그러니 모두 삶을 사랑하고 삶과 연애하는 게 맞기도 하다.


물론 현재 인류의 문명과 실제 생활은 분명 고통스러움의 요소가 크다. 그건 하나의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모델만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다. 사실 삶과 존재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이제까지의 인류의 숭고한 투쟁도 이 두 모델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고 있고 말이다.


또 앞으로의 계속 되는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기술과 제도, 정치, 경제적 환경을 변화시켜 얼마든지 '삶의 결혼' 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다. 각자 개인적으로. 그리고 점점 집단적으로.


우리 세대에서 되면 가장 좋고. 만약 우리 세대가 아니라도 우리 다음 세대에, 혹은 그 다음, 다음 세대에라도 말이다. 아마 결국엔 될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설레는 상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