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신이 우리에게 보낸 천사들이다
제목은 좀 낯설 수 있지만 내용은 누구나 이해될 경우이다.
반려 동물들과 함께 살 때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보이지 않는 이점 중에 하나가 '동물 명상'이 아닐까 한다. 이건 물론 본래 있는 말이 아니라 필자가 만든 것이다.
무엇이 '동물 명상'일까?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가령 이런 거다. 인간은 생각이 많다. 언어 기능으로 생기는 모든 분별, 관념, 앎들이 이 생각에 포함된다. 물론 생각은 인간의 가장 큰 무기 중에 하나이다. 진화의 과정 중에 생긴 훌륭한 도구이다. 문제는, 아직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아마도 미래에는 오지 않을까 한다.
오해하지 말 것은, 생각을 정복한다는 것은 생각을 아예 하지 않거나 혹은 생각을 마음대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생각을 골라서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게 아니라 '생각의 정체 혹은 본질'를 통찰한다는 것이다. 눈치채고 알아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생각을 도구로서 잘 사용하되, 인간 자신이 만든 생각에 스스로 메이고, 묶이고, 매몰되고, 헤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의 주인으로서, 생각을 도구로 잘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생각이 '단지 생각일 뿐임'을 늘 자각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아직은 미처 생각이 도구임을 온전히 모르고 있다. 생각을 '절대 사실'이라고 믿고 있고, 생각과 자신과의 동일시에도 한참 빠져 있다.
아직 그렇게 생각을 온전히 도구로서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생각이 많은 일상 중에 문득 함께 사는 반려 동물을 본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게 저 친구들의 상태로 은연 중에 가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음... 이건 사실 의식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반려 동물을 보면서 '음.. 동물은 우리만큼 생각을 안 하겠지. 저 놈도 그럴 거야. 별생각 없는 멍하거나 혹은 그냥 좀 차분한 상태이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우리도 모르게 뭔가 불필요 하거나 번잡한 생각 없는 어떤 상태일 것이라고 느끼면서 그 동물을 마주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비슷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물론 반려 동물 중에는 하루 종일 유난을 떨고, 부산하고, 난리에 난리인 친구들도 꽤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그건 그냥 어떤 움직임으로서의 것이지 생각이 복잡하거나 한 건 아님을 안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 많은 우리 인간이 잊어버린 순수함, 천진난만이랄까... 혹은 어떤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상태.
(물론 사실은 반려 동물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러하기도 하다. 또한 동물들이 아무 것도 모르거나 아예 생각이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우리 혼자서는 아무리 눈 감고, 가부좌 틀고,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앉아 있어도 쉽게 얻지 못하거나 짐작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할 그런 상태를, 단지 눈 앞의 반려 동물을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저절로 느껴보게 되는 것. 이런 것을 '동물 명상'이라 칭할만하지 않을까? 물론 반은 농담이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예는, 아이들(물론 반려 동물들, 반려 친구들이라는 명칭도 좋다)의 어떤 무심함이다. 가령, 나도 과거에 함께 하던 냥이들이 조금 심하게 아프거나 다치거나 한 적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것을 느끼고 표현은 하지만 그것뿐이었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인간들이 자기가 아프거나 할 때 가지게 마련인 여러 가지 불평, 불만, 불안, 두려움 따위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아프면 아픈 것 자체만,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것 자체만 느끼고 표현할 뿐이었다.
미래가 불안하더느니, 삶이 고달프다느니, 내 운명이나 내 팔자가 기구하다느니,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냐느니 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로서는 그런 측면, 그럼 모습이 정말 감동 있게 다가왔었다. 이것도 하나의 '동물 명상'이라면 명상이었다.
아마 이 외에도 여럿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반려 동물, 반려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이 아이들을 통해 얻게 되는 삶과 존재의 여러 통찰들이 말이다.
각자 자신만의 '동물 명상'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위에 나온 두 유형이 아니더라도 아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령, 어떤 조건 없이도 우리 마음에 한 가득 벅찬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경우도 해당 되겠다.
번잡한 우리 인간들과 기꺼이 함께 해 주면서,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듯 하지만 사실은 우리를 돌볼고 있을 세상의 모든 반려 동물 친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이 글을 바친다.
사랑해 미미, 꼬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