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Oct 21. 2015

20. 두 개의 진리

아무도 진리가 하나라고 한 적이 없다

자기 미움과 같은 개인적인 갈등이나 고민

혹은 둘 이상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충돌에서

모두가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이 맞는가' 혹은

'누가 옳은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개인의 일이든 둘 이상의 일이든

결국엔 '뭔가 맞는 하나, 진짜인 하나'를

찾고 또 확정해야만

그 상황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로

'한 개의 진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 믿음,

어릴 때부터 받아온

어떤 교육과 주입들에 의해

나도 모르게 생성된

무의식적 믿음 외에

'하나의 진리'를 뒷받침해 줄

그 어떤 증거도 사실은 없습니다.


아, 물론

상황에 따라 그리고 경우에 따라

누구의 말이 좀 더 사실에 가깝거나

혹은 공통의 상식과 보편성에 가까운지

정확히 그리고 정밀히 따져야 할 때는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잘 따져서

정확한, 적절한 결말을 내어야 합니다.

이건 너무 당연합니다.


가령,

일과 관련된 결정을 할 때,

혹은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에 따라

벌과 상을 주어야 할 때,

어느 편의 손해와 이익이 결정 날 때,

그리고 범죄나 재판 등의 경우엔

분명 사실성, 진실성 여부를

최대한 공평히 가려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들도  

그 결정이 간단치만은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 해야죠.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서는

그 정도로 시시비비를 가릴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자면 말이지요.

대부분은 누가 옳든 아니든

삶에 그렇게 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순간들에서

무던히도 시비를 가리고자 합니다.

내가, 우리편이 좀 더 옳고, 맞고, 정확함을

인정받고합니다.

 

즉, '내가 진리다. 그 한 개의 진리는 내 것이다'이지요.

사실은 일종의 인정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분히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진리가 한 개'라는 것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증명되거나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여기고

믿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이 부분을 진짜로 눈치채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고 또 유용한 표현은

'진리는 N 개이다'입니다.

물론 여기서 'N'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합니다.

 실제 유연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모두가 더 선호하는

'한 개의 진리'도 물론 가능하며,

(앞서도 말했지만 필요한 경우엔 꼭 써야 합니다)

너와 나의 '두 개의 진리'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N 개의 진리'마저도.


이렇게 말하면 또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혼란이 생기지 않느냐'고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강제나 유일 정답이 아닙니다.

즉 'N 개의 진리'도 유일한 진리가 아닙니다.


'N 개의 진리'의 법칙은 그 법칙에

안주하고자 만든 법칙이 아니라

오직 '잘 활용'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좀 더 유용하고 효용성이 높다면

그러면 기꺼이 이용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의 노예가 아니라

진리의 주인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의 진리'가 필요할 때는

또 기꺼이 이용하십시오.

다만, 그러면서도 두 개의 진리, N 개의 진리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한 개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고집과 강요가

만약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그러면 굳이 그것만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진리'도 보고 '너의 진리'도 함께 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우리의 진리'도 필요하다면

같이 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한 개의 진리'를 고집할 때

즉 '나 혹은 우리만의 진리, 정답, 옮음, 주장'을 고집할 때

풀리지 않던 문제가 '두 개의 진리'

즉 나와 너의 진리를 동시에 볼 때

풀어진다면 그러면 그것이 바로 진짜 지혜인 것입니다.

사실 제법 많은 갈등, 충돌, 문제가

그렇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진짜 목표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행복이지

'진리' 따위가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농담 하나.


어쩌면 '진리는 하나이다'라는

우리의 느낌, 여김, 믿음은

우리가 보는 태양이 하나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이 하나인 태양을 봐 왔고

태어나서도 쭉 보고, 계속 다 같이 보고 있으니

'뭔가 진리도 하나일 거야!'는 어떤 본능적 느낌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태양이 두 개이거나 그 이상인

어떤 별에 태어났다면

진리도 그렇다고 지금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겠지요.


물론 농담입니다.


하지만, 이 농담을 굳이 해 보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진리가 하나다'라는

그 느낌과 믿음을

아주 가볍게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실제로도 아주 가볍기 때문입니다.

(필요에 의해 무겁게 여겨야 할 때를 제외하곤)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 별개인 둘이 아니라 '극성이 둘인 하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