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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Feb 08. 2017

인간이 끝끝내 눈치채지 못하는 앎이 있다

모든 앎이 '다만 앎일 뿐임'을 눈치채기

인간은 모든 앎을 앎으로 눈치챌 수 있다.


즉 무엇을 알되 '그래, 이건 내가 앎으로써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지'라고 할 수 있다

앎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앎이다'라고 안다는 말이다.


하지만 끝끝내 앎으로 눈치채지 못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안다'는 그 앎의 행위 혹은 앎의 기능 자체의 앎성이다.


이것도 역시 앎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앎이다.

혹은 거의 최초의 앎이다.

원초적 앎이다.

그래서 이것조차도 앎임을 눈치채는 경우가 많지 않다.


/


그리고 더 미세한 혹은 정말 최초의 앎이 하나 더 있다.


사실 이것과 앞서의 '내가 안다'는 한 쌍으로

같이 피어오르는 앎이다.


바로 '뭔가를 아는 내가 있다'는 앎이다.

다시 쓰면 '내가 있다'는 앎이다.

(앎에는 느낌, 감각도 포함된다)


이것은 최초의 앎이자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앎의 핵이다.


그런데 이 앎은 스스로를 앎이라 여기지 않는다.

아니, 스스로가 '자신이 한낱 앎에 불과함'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기는 앎이 아니라 앎의 주체라고,

앎의 행위자라고 여긴다.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것 역시 하나의 앎에 불과하다.

아무리 뻗대 보았자 별 수 없다.


/


이보다 한 단계  더 미세하게 들어가면 '있다'가 있다.


존재감이다.(느낌, 감각도 앎이라고 했다)


'나'를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존재감이다.

본질상 앞의 '내가 있음'과 같지만

'내가'를 지우는 것으로 아주 미세하게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나', '내가'를 지우고

'있음, 있다'로 한다고 해도

뭔가가 있으려면 끝끝내 그 존재, 있음의

주체 혹은 행위자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있음'과 '있음'의 질은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다.


/


'나'를 지우고 

혹은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그냥 있음'으로만 존재해 보는 것, 

존재감을 느껴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척 유용하다.


이 명상을 제대로 하는 방법은,

'있음'의 느낌 외에는 

모두 날려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만드는 그 어떤 분별, 앎, 느낌, 생각이라도

아무 의미 없음, 실체 없음, 자성 없음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면서

오직 마지막 '있음'만 

유일하게 느끼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있음명상을 제대로 하면 할수록

마음과 일상과 삶이

점점 더 여유로워지고 자유롭게 된다.


/


앞서 말한

'내가 안다', '아는 내가 있다', '내가 있다', '있다'는

모두 사실상 동일한 현상이다.

모두 '앎'이다.


그 앎의 주체 따위는 없다.

그냥 앎 자체 혹은 그러한 자각 자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른 모든 감각, 생각, 지식 등은 앎으로 눈치채면서도

정작 그 앎들의 바탕 역할을 하는

'내가 안다, 아는 내가 있다, 내가 있다, 있다'

모두 역시 다만 앎임을 눈치채지 못하기에,

아무리 앎을 앎으로 눈치챈다고 해도

앎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의자 위에서 의자를 들려하게 될 뿐이다.


/


물론 앎은 감옥인 것만이 아니다.

앎은 훌륭한 도구이다.

유용한 도구이다.

다만 그 본래의 유용성과 상관없이 

앎을 절대화하고 전부시하면서

이 착각과 무지, 무명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고통, 번민, 혼돈,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앎의 정체를 눈치채야 한다.

앎 자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지막 혹은 최초의 앎들인

'내가 안다, 아는 내가 있다, 내가 있다, 있다'도

모두 앎임을 눈치채야 한다.


수용해야 한다.

허락해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알아채야 한다.

그것들이 앎이 아니라는 고집을 놓아야 한다.

품으며 동시에 넘어서야 한다.


생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되어야 한다.


이 방법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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