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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펙티눔 왕이 다섯 신하에게 명하다

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1)

페르펙티눔 왕은 문득 인간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이 드넓은 우주에 보잘것없는 한 줌의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작은 인간이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굳이 비참한 인식론에 젖어 드는 까닭. 인간이 굳이 정의롭고 선해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한 의문, 인간의 여러 특성이 어째서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추하기도 한지에 대한 하나뿐인 해답. 페르펙티눔 왕은 영광스러운 다섯 신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왕에게 표면적으로나마 충성을 바치는 다섯 신하는 왕의 명을 받들어 인간의 의미와 관련 있어 보이는 건 무엇이든지 찾아오기로 했다. 그들의 탐색 범위는 여러 항성계와 행성들을 넘나들어야 할 것이었다. 다섯 신하는 각자 다섯 방향으로 퍼져 길을 떠났다.


만 년의 시간 동안 다섯 신하는 우주 곳곳을 열심히 뒤졌고, 그중 일부는 무엇인가를 들고 돌아왔다. 이윽고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왕은 돌아온 신하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가져온 것을 평하도록 하였다.



첫째 신하 디미디아 비타스가 왕의 앞에 나서서 절을 하며 커다란 금속 덩어리를 바쳤다. 그 금속은 번쩍이는 은빛 광채를 지녔고, 단단해 보이면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비타스가 고했다.


“왕이시여, 이 금속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희귀하고 가치가 높은 물질입니다.”


페르펙티눔 왕은 엄숙하게 물었다.


“‘가치’란 게 무엇인가?”


비타스가 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치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지, 또 그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이 금속은 극도로 희귀한데도 누구나 탐하며 그리하기 때문에 탐하는 자 전부가 이 금속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이 금속엔 높은 가치가 매겨집니다. 이 번쩍이는 광채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것으로 집 내부를 꾸미거나 조각 작품을 만든다면 예술을 아는 호사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작고 동그란 모양으로 주조해 사용한다면 물물교환보다 훨씬 신속하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하는 ‘가치’와 내가 찾으라 한 인간의 의미는 무슨 상관인가?”


“저는 인간의 의미란 그가 소유하는 물건들의 ‘가치’를 통해 만들어 진다고 보았습니다. 즉, 이 금속을 누구보다 많이 모아, 다른 인간들이 원한다 해도 부족하여 가질 수 없게 만들어, 소유한 금속의 가치를 한껏 높이는 것만이 바로 인간의 의미입니다.”


비타스의 장광설이 끝났다. 하지만 페르펙티눔 왕은 그를 내리깔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두 번째 신하를 손짓해 불렀다. 비타스는 물러나고 그 자리에 둘째 신하 피보나시우스 프로스페르무스가 서둘러 엎드렸다. 그가 두 손바닥을 펼치자 각 손에 이상하게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한 마리씩 드러났다. 그는 손바닥 째로 그것들을 왕에게 바쳤다.


“왕이시여, 이것들은 호모라고 불리는 생명체이옵니다.”


왕이 반문했다.


“이것들이 인간의 의미와 무슨 상관인가?”


프로스페르무스는 서둘러 답했다.


“어떤 행성에 수억 마리가 퍼져 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부드러운 몸체를 가졌으며, 정말로 신기한 생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를 것입니다.”


프로스페르무스는 두 호모를 한 손바닥에 놓았고, 두 마리는 신기하게도 자석에 이끌리듯 빠르게 붙었다. 그들은 한 몸체처럼 붙어 몇 번이나 꼬물거리며 붙었다 떨어졌다 했다. 이윽고 호모 한 마리의 몸체가 약간 커지더니 그것의 몸에서 곧 작은 호모 한 마리가 분리되었고, 이윽고 또 세 마리가 서로 요상스러운 움직임들을 수시로 반복하여 그 수를 5마리, 8마리, 13마리로 늘렸다. 좌중의 사람들은 그 생물체의 역겹고도 더러운 생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어떤 이는 그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기까지 했다. 왕 또한 그 기괴한 생물체를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프로스페르무스에게 호통을 쳤다.


이 음탕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인간의 의미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프로스페르무스는 고개를 재빨리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모의 생태는 보기엔 음탕해 보이지만, 저는 이 행위야말로 인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은 이런 움직임을 통해 두 개체의 코드를 절반씩 나누어 섞는데, 그 모자이크된 코드를 상속받아 생기는 개체 또한 후계에 코드를 상속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없이 교차 편집된 코드는 그들의 다양성 분산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교차 편집되었다 해도 절반의 코드는 그것을 물려준 호모의 코드와 동등하기 때문에, 부모 클래스는 자식 클래스를 후계자로 여기며 계통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인간의 코드엔 이처럼 자신의 코드를 상속하여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기능이 없습니다. 허나 이처럼 코드를 물려주어 새로운 복제본을 만들고 계통이 영원히 번영하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폐하께서 찾으시던 인간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왕은 프로스페르무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로스페르무스는 벌써 백 마리나 되어 보이는 호모들을 대충 손바닥으로 쓸어서 치우고 물러섰다. 이어서 셋째 신하 셀피시우스 멤미우스가 등장했다(그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니, 이제 그의 운명을 지켜보시라). 그는 책 한 권을 두 손으로 고이 받쳐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달음에 절했다. 그 책은 두꺼운 양장 제본에 검붉은 가죽으로 표지를 싸고 모서리가 닳지 않도록 화려한 금빛 장식을 더한 책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어떤 행성에 살고 있는 종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행성이 탄생한 사건부터 시작해, 그 표면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국가를 이룩하고, 그들끼리 전쟁하고, 타 행성 제국과도 전쟁하다 노예 종족이 되고,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종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쓰인 책입니다.”


왕이 캐물었다.


“이 책이 내가 찾으라 한 인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가?”


멤미우스는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그들에겐 역사이며 동시에 문학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운율과 그 심오한 언어적 유희는 낭송하는 데에 미적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그들은 이 책을 종교적 말씀을 기록한 성서로 여깁니다. 책의 후반부에 나타난 위대한 지도자는 도탄에 빠진 종족을 구원하였으면서, 또 인간이 보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의 말씀은 그 종족뿐 아니라 전 우주에 걸쳐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미덕입니다. 하여, 저는 인간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이 책의 문구들, 그 위대한 지도자의 말씀들을 따르도록 왕께서 백성에게 칙령을 반포할 것을 간청합니다.”


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멤미우스 또한 책을 옆구리에 낀 채 서둘러 물러났다. 다음은 네 번째 신하인 막시무우루 엔트로피우스의 차례였다. 그러나 그 대신 그를 보좌했던 작은 하인이 왕의 앞에 엎드렸다. 그 하인의 이름은 아겐티우스였다.


“왕이시여, 막시무우루 엔트로피우스는 ‘죽음’에 처했습니다. 그는 폐하께 인간의 의미에 대한 해답으로 이 ‘죽음’의 선언을 대신 전하라 하였습니다.”


왕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신하에게 물었다.


“죽음이라니? 그게 무엇이길래 감히 내가 시킨 일을 완수하지도 않고 이 자리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 것인가?”


아겐티우스는 침착하게 답했다.


“죽음이란, 우리 인간이 아닌, 생물이란 것들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도 끔찍한 재앙입니다. 생물은 죽음이라는 무존재, 무생물, 무심, 무의식적 상태를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으면서도, 오히려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본능적으로 잘 알고 두려워하며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라는 것이 닥치기 직전까지도 공포와 공황을 느끼는 생물은, 정작 죽음이 그것의 생명을 끝장내자마자 마치 마음의 궁극적 평화라도 얻은 것처럼 평안한 표정을 지으며 거룩하게 누워서 안식을 취합니다. 그도 그럴 게, 그 생물은 죽음을 통해 더 이상 생물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우스는 이 죽음의 모순적인 특성을 깨닫고, 이것이야말로 왕께서 찾던 인간의 의미 아니겠느냐고 제게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죽음의 상태를 왕께 전달하려고 여러 수를 생각해 보았으나, 스스로 죽음의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왕께 인간의 의미를 바치는 행위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에 그는 우주의 가장 심원한 곳에서 마치 그가 생물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죽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여 폐하의 지엄하신 명령일지라도 따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엔트로피우스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껍데기만 남은 그의 육체는 눕혀진 채 스스로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왕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작은 하인은 서둘러 물러났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모두가 다섯 번째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섯 번째 신하 또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이 며칠이나 흘렀고 왕은 결국 참지 못하고 분노한 목소리로 다섯 번째 신하를 찾았다.


“디비노 디비수스는 돌아오지 않았는가?”


디비노 디비수스는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의 거취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섯 번째 차례는 우왕좌왕 끝났다. 왕은 자리에 있는 세 신하를 앞으로 나오도록 했다.


이제 왕은 세 신하(와 죽음에 처한 한 신하) 중 누가 가장 인간의 의미를 잘 찾아냈는지 골라 상을 내릴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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