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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미우스의 고민과 페르펙티눔 왕의 행방불명

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3)

왕의 칙령이 왕국 전체에 반포되고, 뒤이어 멤미우스가 경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를 발굴하고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을 조사해 빈 종이책에 기록해 나갔다. 기록이 전하는 인간의 의미에 따라 잘잘못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여러 백성의 소사를 공정하게 판결하려고 노력하였다. 백성들은 기꺼이 멤미우스의 뜻에 따랐고 인간의 의미를 경전에서 찾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후 육만 년 동안 왕국은 평화로웠다. 모두가 페르펙티눔 왕을 칭송했다. 


하지만 실제로 왕국이 잘 유지되고 있었던 건 전적으로 멤미우스의 덕이 컸다. 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하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듯하여, 멤미우스는 문득 프로스페르무스를 생각하였다. 워낙 유능했던 프로스페르무스였기에, 여러 객체로 조각조각 나뉘어 버리게 된 프로스페르무스라면 오히려 그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타스도 떠올렸다. 멤미우스는 비타스와 워낙 각별했기 때문에 그의 잔인한 운명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가장 처절하고 잔인한 형벌인 ‘반만 살아있는’ 형태로 남아있게 된 비타스여. 비타스와 프로스페르무스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아마 왕궁의 지하 감옥에 유폐되어 있을 테다.


멤미우스는 엔트로피우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스스로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리고 지하 감옥 같은 심연에 영원히 갇히게 된 엔트로피우스, 그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비타스나 프로스페르무스를 찾으려 한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만, 엔트로피우스는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것 아닐까?


멤미우스는 마지막으로 소식 없는 디비수스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다섯 신하 중 가장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하고도 의좋지 않았으며, 그가 하는 행동은 괴상망측해 모두 그를 피했다. 다섯 신하 중 가장 의심스러운 자가 행방불명이라니 왕께서 예민하게 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멤미우스는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하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왕이 준엄하고 엄정하게 통치하는 원칙 때문에 불가피하게 딸려 나오는 작고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왕국의 육만 년 동안의 치세야말로 왕의 위대한 통치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왕이 육만 년 동안 잘한 일이라고는 별 게 없었다. 고작해야 다섯 신하에게 인간의 의미를 찾으라고 시킨 일, 그리고 멤미우스를 신관으로 임명했던 일 정도였다. 그 일도 실은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무척이나 얄팍했다. 그가 멤미우스와 그가 가져온 경전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지 그것이 개중 가장 멋져 보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게 거룩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왕은 어느 정도 선정을 베풀려 하는 의지는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왕의 그러한 결심은 사실 몇천 년도 안가 흐물흐물 녹아 없어지고 말았고, 왕이 해야 할 모든 과업은 결국 멤미우스의 일이 되고 말았다.


왕이 언제부터 그 거룩하지 않은 쾌락들에 끌리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왕궁 내부가 스리슬쩍 비타스의 은빛 금속으로 만든 조각상으로 치장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목격한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침소를 담당하는 하인이 멤미우스에게 귀띔해 주었기에 멤미우스는 그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가 백성 모두가 알아 버리고 말았다. 궁전의 중심 왕성에 기존에 있던 벽돌탑이 사라지고 전부 번쩍이는 금속으로 덮인 거대한 금속 탑이 세워졌다. 그 높이 때문에 그것은 궁전 담장 너머에서도 잘 보였다. 그 건물을 본 자는 모두 그 막대한 양의 금속이 비타스가 가져온 금속 덩어리의 양보다 월등히 많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궁전이 갈수록 화려하고 천박하게 변하는 동안, 왕은 오히려 신하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멤미우스가 왕궁의 하인들 몇몇을 수소문해 본 결과, 왕은 금속 탑 아래에 위치한 계단 입구로 내려가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단에 연결된 공간은 성에서도 가장 아래쪽인, 더럽고 축축하며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뿐이었다. 대체 왕이 그곳에 자꾸 내려가는지, 거기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는 단 한 명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한 명보다 적은 수의 ‘소수’ 인간만이 왕의 목적을 어렴풋이 눈치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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