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4)
왕이 찾은 곳은 프로스페르무스가 갇혀 있는 감옥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선 프로스페르무스보다는 바글대는 호모만을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백만 마리의 호모들. 프로스페르무스가 형벌을 받을 당시에 그와 함께 쓸려온 것들이 지하 감옥 안에서 끝도 없이 증식해 있던 것이었다.
왕은 거기서 쭈구려 앉아 그것들을 관찰했다. 둘씩 짝지어 꿈틀거리는 그 기이한 움직임들을. 그가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그 징그러운 광경에 경악했었는데, 그 느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왕은 굳이 왜 그 끔찍한 생명체를, 정신 나간 움직임을 하염없이 감상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다섯 신하 중 누구도 왕의 취향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왕은 원래부터 말초적이고 저급한 자극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의 침실 구석 은밀한 서랍장에 왕복 운동을 하는 피스톤 로드가 달린 작은 전기 모터가 있다는 사실은 왕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의미’ 운운하며 다섯 신하에게 뭔가를 찾아오라고 시켰을 때도, 그는 이런 것을 찾아오길 내심 바랐는지도 몰랐다. 왕의 욕구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프로스페르무스야말로 응당 왕의 신임을 받아야 할 최고의 신하가 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다. 프로스페르무스의 조각은 호모의 사이사이에 섞여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의 기능들은 객체 지향으로 분절되었기 때문에 그는 왕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니, 아니다. 그의 일부분은 감옥에 갇히게 된 때부터 왕에게 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정적인 기회들을 몇 번이나 날려 버렸다. 그것들이 실패했던 이유는, 적절한 기능을 하는 객체가 왕에게 부딪쳐 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초로 왕이 지하 감옥에 등장했던 때, 프로스페르무스의 얼굴 인식 객체가 최초로 왕에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왕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응한 것이라, 왕의 몸에 툭 부딪친 후에도 별다른 말도 없이 튕겨 나갔다. 다음으로는 프로스페르무스의 도파민 회로 객체가 도전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왕에게 몸을 부딪는 데 성공하는 확률에 베팅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성공하자 그것은 단지 짜릿한 도파민 오일만 방출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프로스페르무스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성공의 관건은 프로스페르무스의 언어 중추 객체였다. 그러나 언어 객체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말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말하자면 그것은 사용 설명서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용 설명서를 자세히 읽고 자신의 욕구를 왕에게 언어적으로 고할 명령자가 필요했다.
그 명령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객체는 프로스페르무스의 객체 중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후보 중 첫째로 전전두엽 객체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 프로스페르무스가 잡혀갈 당시에 반항도 못한 채 머뭇거리게 한 통제 기능을 너무 세게 부리게 만든 객체였다. 그것이 이번에 다시 한 번 언어 객체와 연결된다 해도, 그것은 왕의 권위에 겁을 먹고 왕에게 별다른 얘기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후보는 해마 객체였는데, 그것은 프로스페르무스가 산산이 해체된 당시의 기억을 담고 있어서 그 억울한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각각의 개체로 산산이 쪼개진 후의 기억은 담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프로스페르무스의 비극적 운명을 완전한 형태로 설명해 내지 못했다. 역시 가장 좋은 후보는 편도체 객체였다. 그것은 자신의 분노와 불안에 그 어떤 객체보다 솔직하였으므로 그의 불만 사항과 처우에 대해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처음 삼만 년 동안 편도체 객체는 호모 사이사이에서 불규칙성을 띤 브라운 운동을 하며 언어 객체와 결합하길 바랐고, 어느 날 드디어 언어 객체와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또 삼만 년 후에 기막힌 우연으로 왕의 귀 근처까지 뛰어드는 데 성공했다.
“왕이시여,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왕은 느닷없이 귀 근처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래 껑충 뛰고 말았다. 그리고 몇십 마리의 호모들을 짓뭉개며 지하 감옥 구석으로 달려가 벌벌 떨었다. 언어 객체와 결합한 프로스페르무스의 편도체 객체는 다행히 왕의 어깨에 잘 붙어 있었고, 왕에게 다시 말할 수 있었다.
“왕이시여, 저는 충성스러운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왕의 몸은 달달 떨려왔지만 그래도 무서운 목소리의 정체가 프로스페르무스라는 걸 알고 나니 조금 안심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못 근엄한 목소리로 지하 감옥의 빈 곳을 향해 소리쳤다.
“프로스페르무스여, 그대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번영하도록 한 형벌을 받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내게 말할 수 있는가?”
“왕이시여, 저는 이제 더 이상 프로스페르무스가 아니며, 그의 부분집합일 뿐입니다. 저는 기억을 회고하는 해마 객체가 없으며, 왕께 당했던 부당했던 형벌에 대한 기억을 가지지 않습니다. 저는 선악을 판단하여 행동을 자제하는 전전두엽 객체도 남아있지 않아, 왕께 본심을 숨기지 않고 전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왕은 하는 그 말에 안심하며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좋다, 더 이상 프로스페르무스가 아닌 프로스페르무스의 부분집합이여.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왕께서 매일 이 지하 감옥을 드나드는 이유는, 호모들의 방종한 생태에 큰 매력을 느껴서 아닙니까?”
“그것은….”
“저는 프로스페르무스의 전체집합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하셔도 됩니다.”
“그래, 자네가 가져온 것을 저평가하고 형벌을 내린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호모란 정말로 매혹적인 생물이더군. 그것들의 추잡해 보이는 움직임엔 기실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 보여.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진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움직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걸 인정하게 되었도다.”
왕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손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깨의 스카치 요크 기어가 시동을 걸어 회전운동을 팔의 왕복운동으로 전환했고, 손은 느긋하게 몸의 요철을 매만졌다. 프로스페르무스는 왕의 손이 부리는 동작을 모르는 척했다. 왕은 계속해서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이것들의 목적이라면 당연히 자기복제일 테지.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그 목적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에 불행해졌는지도 몰라. 왜냐하면, 복제란 건 결국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이거든. 어느 날, 나는 이것들의 개체수를 세어보기 시작했네. 처음에, 천에 지나지 않았던 개체의 수는 금세 만을 넘었지만, 십만에 도달하자 그 증가율은 감소하기 시작했다네. 그리고 십만에서 백만까지 도달하는 건 꽤 오래 걸렸지. 이제 이것들의 수는 완전히 정체 상태에 이르렀네. 하지만 그들의 꿈틀거림과 육체 복제 행위 또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 부분적으로 보자면 분명히 2는 3이 되고 3은 5가 되고 있어. 그런데 통계적으로 백만은 계속해서 백만일 뿐이야. 저 거대한 집단의 사이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왕은 여전히 자신의 손으로 그의 요철을 덮고 진폭과 진동수가 작은 왕복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왕의 손이 저절로 떼어졌다. 그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었지만 스카치 디스크 회전운동은 금새 멈추지 않아서 손은 위로 향한 채 꿈틀거렸다. 왕의 요철 위에 왕 대신 쓰다듬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왕이시여, 왕께서는 비타스에 내린 형벌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네. 그에게 난 ‘반만 살아있는 형벌’을 내렸지. 그는 끔찍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야. 감히 인간의 의미를 물질적인 ‘가치’로 취급하다니.”
왕의 손 대신 요철 위에서 왕복 운동을 하고 있던 건, 프로스페르무스의 또 다른 일부인 일차 운동 피질 객체였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싸인 곡선만을 그렸지만, 지금 왕에게 필요한 건 오직 그 단순한 움직임뿐이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비타스가 받은 것보다 더 잔인한 형벌이 있지 않습니까? 왜 그 형벌을 내리지 않으십니까?”
왕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갑자기 입에 올려선 안 되는 말이라도 하는 양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분의 일만 살아 있게 하는, 아무도 받아본 적 없는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형벌 말인가? 그건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왕이 불현듯 몸서리치며 몸을 흔들었다. 프로스페르무스의 일차 운동 피질 객체와의 공명이 잠시 깨져 카오스적 움직임이 일어났고, 운동 피질 객체가 왕의 몸에서 분리될 뻔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뚱아리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왕이시여,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고작 사분의 일만이겠습니까? 만약, 그 형벌의 강도를 두 배로 높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왕은 공포가 묻어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파…, 팔분의 일? 그렇게 극도로 끔찍하고도 비인간적인 형벌이라니!”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가 껄껄 웃었다.
“왕이시여, 겨우 팔분의 일만으로 놀라시다니요. 이제 반만 살아 있는 비타스를 만나러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지하감옥에서 깨닫게 된 인간의 진정한 의미란, 그것보다도 더 심연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