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5)
“멤미우스님, 광부가 멤미우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멤미우스에게 광부의 일을 알린 자는 바로 죽은 엔트로피우스의 하인이었던 아겐티우스였다. 아겐티우스는 멤미우스의 부탁으로 왕국의 다양한 백성들을 모집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아겐티우스는 왕궁을 장식한 막대한 양의 금속의 출처를 찾기 위해 광부들을 수소문했고, 수많은 광부가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일을 했는지, 또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곧이곧대로 밝히려는 이는 없었다. 아겐티우스가 본격적으로 물어보려 하면 다들 꿀 바른 벙어리가 되었다. 아겐티우스는 그중 억울한 일로 탄원하겠다는 광부 한 명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멤미우스에게 직접 말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아겐티우스는 멤미우스의 집무실로 찾아오도록 했다.
“들라 하게.”
광부는 여느 무지렁이 백성들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온몸을 질질 끌며 멤미우스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땅바닥에 엎드리며 과장되게 절을 했다. 기름칠 하지 않은 무릎에서 끼익 소리가 났다.
“멤미우스 나리, 우리 광부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멤미우스는 눈살 찌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평온한 표정을 짓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느냐?”
광부가 다시 꼴사납게 엎드리려고 하여 멤미우스는 황급히 팔로 막아섰다.
“나리, 우리 광부들은 절대로 수송선을 폭파하지 않았습니다요!”
“대뜸 그게 무슨 말이냐? 무슨 수송선이 폭파되었다는 게냐?”
“그게…. 그것은 제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여튼,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광부들은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요. 그 수송선은 저절로 폭파되었습니다!”
“네놈에게 도움을 줄 터이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거라. 일단, 그대의 이름을 밝혀라.”
광부가 온몸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붉은색 녹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네, 제 이름은 프롤레타리우스이며 광부입니다.”
“그대는 무슨 일을 하는가?”
“광부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땅을 파고 광석을 캐는 일입죠!”
“그렇다면, 그대는 어디에서 그 일을 했느냐?”
“정체불명의 외계 행성에 가서 정체불명의 광석을 캐다 왔습니다요.”
메미우스는 황당함을 최대한 숨기고 작지만 단호하게 호통쳤다.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어떤 외계 행성에서 무엇을 캤느냐?”
“그게…, 관리자께서 거기에 갔던 광부들 모두에게 단단히 일렀습죠. 이 업무에 대해 누가 물어보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멤미우스는 왕이 모아둔 금속의 출처를 찾기 왜 그리 어려웠는지를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하려고 해도, 위쪽에서 함구하게 했기 때문일 터였다. 게다가, 이들은 억울한 게 있어도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멤미우스는 일부러 헛기침을 크게 하곤 거만하게 말했다.
“에헴, 그 관리자보다 높은 자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프롤레타리우스는 또다시 화들짝 놀라며 굽신댔다.
“멤미우스 나리, 맞습니다요.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니 아는 것을 전부 말하거라. 숨기는 게 없어야 할 것이야.”
프롤레타리우스는 망설이다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네네, 그럼요. 저는 절대로 숨기지 않습니다. 우선 행성에 대해서라면, 정말로 저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요. 이름도, 위치도 전혀 모르지요. 저희는 도착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몇천 년 동안 항해해 희뿌연 초록빛 행성에 도착하였습니다. 광석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그 신비로운 은빛 광택이 정말로 아름다운 광성이었지요. 하지만 거기 갔던 광부 누구도 광석의 이름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요. 소문에 의하면, 광석은 오직 그 행성에서만 나오며 전 우주를 통틀어 무척 희귀하다고 합니다.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그 광석을 캐다 나르기만 했습니다.”
멤미우스는 왕궁을 꾸미는 데 쓰인 은빛 금속이 전부 이들이 캐내 온 금속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광부가 다녀온 외계 행성은 비타스가 다녀온 행성일 터였다.
“캐낸 광석의 양은 얼마나 되는가?”
“여섯 대의 광석 수송선을 꽉 채울 정도였으니, 꽤 많은 양입죠.”
멤미우스는 왕국의 탑에 장식된 그 금속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아무리 통째로 지어진 금속 건물이라 해도, 수송선 여섯 대의 양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양에 불과했다. 그만큼 이 광부가 하는 말은 허무맹랑했다.
“수송선 여섯 대나 되는 어마어마한 광석들을 전부 왕국으로 옮겼단 말이냐?”
“아닙니다. 마지막 수송선은 저절로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실려 있던 광석은 엄청난 불길에 의해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만. 그 폭발지엔 아름다운 은빛 광석은 전부 사라지고 잘 부스러지는 쇳빛 광물만이 남아 있었지요.”
“수송선이 폭파되다니, 그렇게 큰 일이 저절로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정말로 모를 일입니다. 저희 광부들은 절대로 억울합니다.”
마지막 수송선이 폭파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터무니없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멤미우스는 광부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들이 수송선을 폭파해야 했을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여섯 번째의 수송선에 실린 광석이 다른 광석에 비해 이상한 점이 있었는가?”
“마지막 수송선에 실린 광석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 수송선엔, 다른 수송선보다 조금 더 광석을 많이 실었을 뿐입죠. 어느 순간부터 그 광석의 초록빛이 몇십, 아니 몇백 배나 밝게 반짝였습니다. 다들 이상한 점을 눈치챘지만, 관리자께서 마지막 수송선이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실으라 우리를 채근하셔서….”
“그 광석은 본디 은빛 아니더냐? 무슨 초록빛이 난다고?”
“나리, 실눈을 뜨고 광석을 보면 은은한 초록빛이 보입니다. 그 초록빛은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더 강해지지요.”
멤미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광석을 많이 실으면 초록빛이 더 많이 반짝인다니….”
“그렇습니다, 나리. 광석은 밤에 은은한 초록빛을 내뿜는 광석이었습니다. 그건 어둠 속에서도 혼자서 반짝였죠. 행성에선 그 빛 덕분에 밤에도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매서운 날씨가 기지를 덮칠 때면, 광석 덩어리 하나를 품에 두고 쬐어 몸을 따뜻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두들 그 광석을 품에 안고 잠에 들었습죠.”
멤미우스는 프롤레타리우스의 말을 기록하며 생각에 잠겼다. 비타스가 처음 왕에게 그 금속을 바칠 당시에도, 그 광석은 자체로 은은한 초록빛을 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본래의 은빛 광택과 함께 스스로 발광하는 미약한 초록빛이 섞여 그렇게 아름답게 반짝였는지도 몰랐다.
프롤레타리우스가 뭔가 생각난 듯이 멤미우스에게 말했다.
“아, 그 광석의 빛에 대해 드릴 말씀이 더 있습니다. 어떤 이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호모 한 마리를 들고 키우고 있었습니다(그자가 어디서 호모를 구하게 된 건지 다들 쉬쉬하고 있습니다만, 왕국의 지하에 호모가 바글거리며 살고 있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광석의 빛을 쐬자, 그 호모는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이라고? 엔트로피우스의 죽음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처음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호모의 주인은 호모를 일으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게 되자, 광부는 결국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슬퍼했다는 얘기가 있었습죠.”
멤미우스는 광부들이 그런 어려운 개념까지 알 정도로 현명하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해 머뭇거렸다. 그 틈에 프롤레타리우스가 신나서 떠들었다.
“그리고 호모의 죽음을 목격한 몇몇 광부이 죽음에 대한 미신을 믿기 시작했습니다요. 그들은 암암리에 모여 뭔가 작당을 하고 있지요.”
“작당이라니, 그 외계 행성에서?”
“그곳은 광석이 전부 동났고, 수송선의 폭발로 인하여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광부는 물론이고 남아있는 자 한 명도 없습죠.”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어디에서 작당모의를 하는가?”
“그들이 일을 끝마치고 어디에 돌아와 있겠습니까? 왕국이지요.”
멤미우스가 불현듯 왕국 내부의 불안정한 민심에 대한 소문들을 떠올렸다.
“이 사실을 폐하께서 아신다면 큰일이 날 것이네. 폐하께서는 백성들이 사사로이 모이는 걸 극히 싫어하시지 않는가? 그들을 이끄는 교주가 있다면, 그자를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 체포해 사회의 불안정을 가라앉혀야 하겠어.”
그러자 프롤레타리우스가 콧바람을 내며 웃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교주는 왕국 내엔 있지 않다고 하더랍죠. 그렇게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가 왕국의 영토 안에 있다면 이미 체포되고도 남았을 겝니다. 폐하께서는 다른 일에는 무척이나 무관심하시지만, 반란의 ‘반’이라는 글자만 나와도 극히 반응하시지 않습니까?”
멤미우스는 덜컥 겁을 내며 허둥지둥 일어나 살짝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창문 바깥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멤미우스는 자리에 돌아와 프롤레타리우스를 엄히 꾸짖었다.
“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불충한 말을 내뱉는다니, 네놈이 누구 앞에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프롤레타리우스 또한 자신의 실책을 뒤늦게 깨닫고 표정을 싹 바꾸며 절을 할지 사죄를 할지 우왕좌왕하여 주춤댔다.
“아이고 나리, ‘반만 살’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한 번도 그 사교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억울합니다요. 전 무엇보다도, 수송선의 폭발에 광부들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빨리 해결해 주지 않는 폐하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래, 내가 꼭 폐하께 고해 광부들을 석방토록 하겠네. 오늘은 일단 들어가 보게. 곧 좋은 소식을 전해 줄 테니.”
“감사합니다, 나리. 정말 감사합니다.”
프롤레타리우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급기야 프롤레타리우스는 두 손으로 멤미우스의 손을 잡으려고까지 하였다. 멤미우스는 그의 행동을 제지하며 물었다.
“가기 전에 하나만 물음세. 그 교주란 자가 어디에 있는지 들은 바가 있는가?”
“미천한 광부인 제가 어찌 그런 걸 알겠습니까? 저는 다만 저잣거리의 소문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가 ‘무덤’을 지키고 있다고 하는 소문 말입지요.”
“무덤이라니? 무덤이 무엇인가?”
“저도 그게 무슨 뜻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문에 의하면 죽은 자를 위해 만들어 둔 기념비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얘기만 떠돌더군요.”
멤미우스는 문득 엔트로피우스를 떠올렸다. 엔트로피우스의 죽음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무덤을 만들어 놓았을까? 멤미우스는 나중에 아겐티우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우스가 채 나가지도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왕의 칙령 이후로 엔트로피우스의 죽음에 대한 교리도 경전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믿는다는 죽음의 사교엔 무슨 교리가 있어서 백성들이 거기에 빠져드는 걸까?”
멤미우스의 말을 들은 광부는 나가다 말고 고개를 휙 돌리며 멤미우스에게 말했다.
“우리 대부분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겪어보지도 못했지 않습니까? 단지 엔트로피우스 나리의 소문만을 토대로 죽음이란 게 있다는 걸 주장하는 격이지요. 죽음의 사교는 우리 경전과는 달리 죽음을 경험해야지만 진정으로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우리 인간 또한 어떤 조건에서 광석의 빛을 쬐어 죽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멤미우스는 벌떡 일어나며 두 손으로 책상을 쾅 치고 말했다.
“인간이 하찮은 호모처럼 고작 광석의 빛 따위를 쬐어서 죽음에 처할 수 있다고? 그 방법이 대체 무엇이길래?”
프롤레타리우스가 다시 돌아와 멤미우스의 귀에 속삭였다.
“‘모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