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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스의 감옥에서

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6)

비타스가 갇힌 지하 감옥은 프로스페르무스의 감옥보다도 더 깊숙한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왕은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를 몸 한쪽에 붙인 채 그곳까지 찾아갔다. 그곳은 정방형이었고 꽤 넓었으나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천장 등 하나로 가운데 부분만 비추어 협소해 보였다. 그 가운데 부분엔 비타스가 입구를 등진 채 긴 막대에 묶여 서 있었다. 그 긴 막대의 절반쯤에 가로로 된 막대가 양쪽으로 덧대어 있었다. 오른쪽 막대가 왼쪽 막대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하게 어긋나 있었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위쪽 끝에는 둥그런 장식이 달려 있었고, 오른쪽 막대가 세로 막대와 만나는 곳엔 대각선으로 작은 거스러미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왼쪽 막대엔 비타스의 왼팔이 묶여 있었으나, 오른쪽으로 뻗은 가로 막대엔 오른팔이 달리지 않았다. 그의 오른팔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듯이 힘없이 몸쪽에 툭 떨어져 있었다. 그 오른팔은 약간 흐느적거렸는데, 바람 때문이라기보단 비타스 몸체 내부에서 돌아가는 엔진의 미세 진동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왕은 막대를 돌아 비타스와 마주 섰다. 비타스는 힘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오른눈은 작동 불능 상태임이 분명한 듯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왼눈만이 왕을 알아보는 듯이 공포에 질려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비타스의 입에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같은 예의를 갖춘 말도, “차라리 날 죽여라!” 같은 증오에 찬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에선 그냥 크랭크에서 나는 듯한 ‘끼기긱’ 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가 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비타스는 우뇌 절반만 살아 있는 상태로서, 언어 객체가 있는 좌뇌가 작동 불능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 중에 또 일부, 언어 객체가 툭 떨어지더니 비타스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그것은 비타스의 오른쪽 뒤통수의 슬롯을 찾아 ‘찰칵’하고 결합했다. 그러자 잠시 후 비타스가 말을 시작했다.


“왕이시…, 콜록콜록콜록!”


너무나 오랜만에 언어 객체가 연결된 나머지, 그의 발성 기관의 전력 공급에 약간의 이상 반응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침 때문에 벌어진 입은 기괴하게도 왼쪽 절반만 열렸고, 오른쪽 절반, 아니 그의 오른쪽 얼굴 모두는 살아있지 않은 듯 정지한 모양 그대로였다. 그의 기침 소리는 며칠 동안 울려퍼졌고, 왕은 침착하게 비타스가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렸다.


“비타스여, 반만 살아있게 된 기분은 어떤가?”


“왕이시여, 저를 조롱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신 것입니까? 저는 단지 인간의 의미를 찾으라는 명령에 따라 가치 있는 금속을 바친 것뿐입니다.”


비타스는 왕을 책망하며 울부짖었다. 왕은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금속 덩어리를 꺼내어 눈앞에 보였다.


“이 금속 말이다. 네놈이 가치가 있을 거라고 말했던 금속이다. 내가 가장 처음 얻게 된 금속 덩어리이기도 하지. 이 금속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보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더군.”


그 덩어리는 아예 다른 금속 같았다. 표면엔 찬란한 은빛 광채는 사라지고 탁한 쇳빛만이 눈에 띄었다.


“이 보잘것없는 광석을 보라!”


왕이 그것을 두 손으로 힘껏 움켜쥐자, 그 금속은 힘없이 부스러져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왼손에 쇳빛의 덩어리가 남았지만, 오른손에 남은 덩어리의 단면에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왕은 그 덩어리들을 양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비타스의 양 눈에 가져다 대었다. 비타스가 찬란히 비치는 왕의 오른손바닥에 올려진 은빛 광채를 보고 왼쪽 눈을 찌푸렸다.


“두 눈이 있다면 똑똑히 보아라. 네놈이 말한 ‘가치’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왕의 오른손을 쳐다보는 비타스의 왼쪽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비타스의 고장 난 오른쪽 눈은 탁한 쇳빛 금속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아아아, 이 아름답고 눈부신 광채라니! 왕이시여, 이 금속을 원하는 자는 우주 어디에서건 찾을 수 있지만, 수량이 워낙에 부족하기 때문에 교환가치를 통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금속과의 물물교환을 통해….”


무슨 오해가 발생했는지 재빨리 이해한 프로스페르무스의 편도체 객체가 황급히 왕의 팔로 뛰어들어 두 금속을 바꿔치기했다. 이제 제대로 작동하는 비타스의 왼쪽 눈은 탁하게 변해 버린 금속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아, 왕이시여, 이럴 수가…. 그 아름답게 반짝이던 금속이 이렇게 변해버렸단 말씀입니까? 그렇게 찬란하던 광채가….”


“비록 짐이 네놈을 벌주긴 했어도, 짐은 네놈을 믿었다. 짐은 네놈이 발견한 행성에 광부들을 보내 광석을 전부 캐오게 했지. 그리고 수송해 온 광석을 제련해 주괴를 만들고 칼과 방패, 갑옷을 만들었지. 그 병장기는 아주 강하고 단단해서, 이것으로 군대를 무장시킨다면 우주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군대를 양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왕은 한쪽 손에 올려진 약간의 광채가 나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쇳빛 금속의 가루가 후두둑 떨어지고 나자, 그 광휘의 금속은 더더욱 빛났다.


“하지만 이 금속은 수명을 가지고 있더군. 네놈은 이 금속이 이렇게 될지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 육만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덩어리의 절반이나 칙칙한 싸구려 금속으로 변해 버리고 말다니. 난 고민했었다. 그대에게 과도한 형벌을 내린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야. 하지만 결국 짐의 결정은 매우 훌륭하고 합당했도다. 네놈은 금속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감춘 채 짐에게 가치니 뭐니 운운하며 속이려 한 것이야. 말해 보라. 내 말이 틀렸는가?”


비타스는 갑자기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처음엔 기름칠하지 않은 크랭크처럼 작게 클클거리기만 했고, 점차 커져 나중엔 자명종 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텅 빈 감옥 내부에서 메아리쳤다.


“왕이시여, 중요한 건 ‘절반’보다 더 나쁜 상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왕은 갑자기 돌변한 비타스에 살짝 겁먹은 채로 그에게 되물었다.


”나…,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은 사분의 일의 상태 아니냐?”


“사분의 일보다, 팔분의 일보다, 심지어 십육분의 일보다 더 심연의 상태, 극한으로 도달하는 상태 말입니다. 금속이 육만 년 동안 절반만 남았다면, 그 후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십이만 년이 지난다면 사분의 일로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고작 절반, 절반의 절반, 최대 절반의 절반의 절반, 이 정도까지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에서 절반의 삶을 산 지 벌써 육만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절반의 인식만으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그 무한대로 가는 값이 도달하는 곳 말입니다.”


그 ‘극한’에 대해 생애 단 한 번이라도 떠올려본 적 없던 왕은 두려움에 떨어 목소리도 잠겼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짐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도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엔트로피우스가 스스로 불러일으켰으며,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호모족이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생물이면 도달하는 궁극의 상태. 어떤 생물도 우리처럼 영원히 살아있지 않더라 하지요. 우리 또한 그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건만, 미약한 에너지와 필연적으로 사멸할 운명을 지닌 생물은 그 근원적 공포를 태생적으로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담고 있다고 합니다.”


왕의 손이 프로스페르무스의 일차 운동 객체가 만져줄 때와는 다른 함숫값으로 덜덜덜 떨렸다.


“그 두려움과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니, 너무나 끔찍하도다! 어떻게 그들이 미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그러자 비타스에 붙어 있던 프로스페르무스의 언어 객체가 다시 왕의 몸으로 돌아와 편도체 객체와 결합했다. 그러고는 왕의 귀에 대고 두 가닥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속삭였다.


“생물이라면 필히 그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프로세스를 내재하고 있으니. 그들은 개체는 사멸하지만 계통은 불멸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지요.”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가 내뱉는 달콤한 속삭임과, 따로 작동하고 있는 프로스페르무스의 운동 객체가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다시금 왕의 욕정을 깨우쳤다. 왕은 그 짜릿한 쾌감에 다시금 몸을 떨었다. 이 감각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죽음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강렬한 쾌감을 더 증폭시켜 얻을 수 있을까?


개체의 영원한 삶을 바쳐 ‘코드’만을 영원히 복제하게 할 수만 있다면!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여, 그 방법을 내게 알려줄 것을 간청하노라.”


프로스페르무스의 일부가 비타스를 가리켰다.


“이미 비타스는 감수분열 하였습니다. 그의 절반으로 쪼개진 코드는 폐하의 코드 중 절반을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끝냈습니다. 왕께서는 이제 ‘모드’ 전환을 수행할 것이옵니다.”


“모드라니, 그게 무엇인가?”


“모드란 선택입니다. 균형의 게임입니다. 영원히 기계적인 상수함수 대신, 무한대로 확장하는 생명의 감수분열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왕은 지체없이 외쳤다.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잊기 위해, 영원불멸하는 코드를 위해 짐은 비타스에 그 프로세스를 실행하길 명한다!”


비타스의 몸 내부에서 기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듯이, 철컹거리고 위잉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의 몸 중심부에 원기둥 모양의 금속 실린더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왕은 그것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느꼈는데, 그 욕구란 아까 호모의 행위들을 보며 자신의 몸을 쓰다듬던 그 욕구와 비슷했지만, 더 강렬했다. 뜨겁고, 윤활적이며, 싸인 곡선의 왕복 운동을 하는.


“모드 전환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비타스의 몸속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왕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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