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7)
그날도 프롤레타리우스는 감옥에 갇힌 광부들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궁전 앞 광장을 찾았다. 이미 수많은 광부 동료가 모여 있었다. 몇몇 광부들은 ‘죽음의 신자’였다. 그들은 종교 상징물인 동그라미 쳐진 깃발과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 시위하고 있었다. 높은 담벼락 때문에 궁전의 안쪽은 철망으로 닫힌 대문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우스는 몇년 전 들어가 본 철망으로 굳게 닫힌 대문을 기웃거려 보았다. 그 앞은 드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왕성으로 통하는 입구가 작게 보였다. 프롤레타리우스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그 새로 생긴 은빛 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게 보였다. 멋진 탑이었다. 저 탑이야말로 우리 광부들이 채굴한 금속으로 만들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왕은 우리를 탓하시는가? 우리 광부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지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프롤레타리우스는 다시 궁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성의 입구에서 몇 사람이 꼼지락거리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저번에 보았던 멤미우스나 아겐티우스, 혹은 감옥에서 풀려난 광부 동료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해 목을 길게 빼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군대가 행진하듯 열을 맞춰 줄지어 걸었다. 그 줄은 정원에 트인 길을 지나 철망으로 된 대문까지 도달했는데, 인제야 프롤레타리우스는 그들이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갑옷을 입고 같은 모양의 칼과 방패를 찬 병정들인 것을 알아챘다. 자리에 모인 광부들은 그 큰 규모의 군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프롤레타리우스는 똑같은 생김새의 병정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왕의 얼굴도, 신하 비타스의 얼굴도 닮아 있었다. 철문이 열리고 병정들이 중심 광장의 가장자리로 줄지어 행진했다. 장엄한 열병식이 시작되었다는 대한 소문을 듣고 주변에 살던 백성들까지 삼삼오오 구경하러 나타났다.
그런데 몇몇 백성들과 광부들의 몸 안쪽에서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매끄럽게 윤활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떤 백성은 몸이 뜨겁게 발열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착란 증세를 일으킨 것처럼 굴기도 했다. 이미 몇몇은 둘씩 짝지어 끌어안거나 쓰다듬고, 심지어 몇몇은 피스톤과 실린더를 내어 서로의 윤활유를 교환하기도 했다. 프롤레타리우스 또한 군중들의 변화와 동시에 자신의 몸 상태의 변화도 느껴 혼란스러워했지만,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원인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싶어 병정들이 향하는 방향을 유심히 보았다. 광장의 가장자리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줄지어 행진하던 병정들은 이미 광장을 완전히 에워싸 버렸다. 선두의 병정이 멈추자, 모두가 따라서 멈췄다.
그들은 누구의 명령도 없었는데도 광장 중심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우향우했다. 그러고는 칼을 들어 그 안에 싸인 백성들과 광부들을 위협하는 자세를 취했다. 병정들이 원을 점점 작게 조이자, 흥분 상태를 가라앉힌 몇몇 백성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무슨 상황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광란의 상태에서 서로를 탐하거나, 아니면 혼자서 방방 뛰기만 했다. 프롤레타리우스는 칼이 ‘챙강’하는 소리 그에 맞춰 사람들이 낸 비명 소리를 듣고 큰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야 말았다. 그 원에서 무언가 냄새가 스물스물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가솔린이나 윤활유, 전해질의 냄새와는 완전 달랐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우스가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지만, 그런데도 그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죽음’의 냄새였다. 몇몇 죽음의 신자들이 환호를 질렀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이제서야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무고한 백성들은 공포에 찬 비명을 질렀다. 프롤레타리우스는 병정의 칼을 몇 번이나 맞았으나, 가솔린을 흘리면서도 가까스로 병정의 포위망 틈새를 빠져나갔다.
그 광장에서 그 난리가 난 동안 아겐티우스는 멤미우스의 명령으로 왕궁 바깥을 순시하던 중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온 가솔린투성이의 프롤레타리우스를 마주쳤다. 아겐티우스가 깜짝 놀라며 쓰러지려 하는 프롤레타리우스를 부축했다.
“이보게,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프롤레타리우스는 콜록대면서 아겐티우스에게 고했다.
“아겐티우스님, 죽음이…, 광장에 죽음의 냄새가 퍼지고 있습니다!”
아겐티우스는 단지 가솔린 냄새만을 인지했고 그가 말하는 ‘죽음의 냄새’라는 게 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냄새라니? 어떤 냄새 말인가?”
“‘모드’가 퍼지고 있습니다. 그 코드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 냄새는 모드를 전환시킵니다. 모드가 바뀐 자는 모두 그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됩니다….”
아겐티우스가 프롤레타리우스를 땅에 고이 눕히자 아겐티우스는 골골대는 목소리로 아겐티우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겐티우스님, 멤미우스 나리께 전해 주십시오. 아직 광부들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꼭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프롤레타리우스에게 죽음이 덮쳤다. 아겐티우스는 껍데기만 남은 그의 모습에서 주인이었던 엔트로피우스를 떠올리며 주저앉아 절망했다.
우주선이 고향 항성계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을 때, 아겐티우스는 멤미우스의 말을 듣고 놀라고 말았다.
“멤미우스님, 지금 저희가 한가하게 비타스의 행성을 찾아갈 때입니까?”
멤미우스는 조종석에 앉아 있었는데, 조종간을 쥔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글쎄, 우선은 그 행성을 찾아 부서진 수송선과 폭심지를 조사해야 하지 않나 싶어.”
“사실 멤미우스님은 그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비타스의 행성을 찾는 척하시는 거 아닙니까?”
멤미우스는 뜨끔했다. 아겐티우스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코드가 전염병처럼 퍼져 모드가 바뀌어 버린 백성들과,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왕의 병정들 생각만으로도 멤미우스는 끔찍해 몸서리를 쳤다. 특히 그 병정의 얼굴이 왕과 비타스의 모습을 반반 섞어놓았다는 건…. 그 올곧고 청렴한 비타스가 왕에게 흡수되어 백성들을 죽음의 상태로 몰아넣다니. 멤미우스는 이런 것들을 상상하면 할수록 어디론가 멀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안하네, 아겐티우스. 난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난 단지 역사를 기록하는 신관일 뿐이라고.”
“어떻게 하겠냐고요? 우주선을 다시 돌려야지요.”
아겐티우스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멤미우스가 쥐고 있던 우주선의 조종간을 잡고 방향을 휙 틀었다. 그러나 멤미우스는 그 조종간을 힘주어 원래 상태로 되돌렸고, 약간 흔들렸던 우주선은 다시 항로로 돌아갔다.
“멤미우스님! 엔트로피우스님께서는 이렇게 부끄럽게 굴진 않으셨단 말입니다!”
멤미우스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는 자네는, 섬기는 주인이 죽음에 처하는 걸 보고도 방관하고 돌아오지 않았나!”
아겐티우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멤미우스는 고개를 돌려 슬그머니 그를 보았는데, 그는 침울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변명하듯이 말했다.
“당시엔 엔트로피우스님께서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전 당시엔 언젠가 그분이 돌아올 줄로만 알았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었거든요. 대체 어떤 인간이 ‘죽음’이라는 상태가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믿겠습니까?”
멤미우스는 얄미운 아겐티우스에게 제대로 복수했다고 생각해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나, 급격히 침울해지는 아겐티우스의 표정을 보니 좋아할 일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멤미우스는 갑작스레 우울해하는 아겐티우스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말이 맞네. 우리 모두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엔트로피우스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군. 그대도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을 만들어 두었겠지?”
“무덤이요? 무덤이 뭡니까?”
멤미우스는 짐짓 잘난 체를 했다.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요새는 죽음에 처한 자에게는 ‘무덤’이라는 기념비를 만들어 주는 게 우주적 규칙이라고!”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정말로 바보로군요. 그런 의무도 방관한 채, 제가 모시던 엔트로피우스님을 단지 어둡고 빈 공간에 내버려두고 떠났으니 말이죠.”
멤미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봐, 걱정하지 말라고. 자네가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놓았을 테니까 말이야.”
아겐티우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저번에 만났던 광부 프롤레타리우스가 말하길, 비밀스러운 사교의 교주가 바로 ‘무덤’에 있다고 하더군. 아마 그가 엔트로피우스를 기리며 만들어 놓았을 거야.”
“이해가 안 되는군요. 프롤레타리우스는 엔트로피우스님의 무덤이 아닌 어떤 죽은 생물의 무덤을 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난 그게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이라고 확신한다네. 그들이 기리는 죽음이 대체 아무것도 아닌 호모나 다른 저급한 생물의 무덤일 거로 생각하나? 종교엔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드는 ‘성지’가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대체 그 교주가 누구지요?”
“내가 짐작하는 바를 말해줄 수는 있지만, 우리 한 번 확인해 보지 않겠나? 함께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을 찾아가 보면 어떤가? 그 교주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그리고 그자가 무덤을 진짜로 만들어 놓았는지 확인할 겸 말이야.”
아겐티우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죠.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당장 왕국에 돌아갈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멤미우스는 양팔을 벌리는 제스처를 했다.
“그렇다면 항로를 변경해야 하니까 그 위치를 말해 주게.”
아겐티우스는 약간 당황했다.
“길을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제가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아서.”
멤미우스가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엔트로피우스의 최후가 이루어진 장소가 어딘지 기억하지도 못한단 말인가?”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길치일뿐더러, 당시에도 엔트로피우스님께서 살아나 왕국에 돌아오시리라고 생각했기에 위치를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얘기하다 보면 뭐라도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흠, 제가 엔트로피우스님께서 어떤 경위로 폐하의 명령을 토대로 ‘죽음’을 찾아내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린 적 있나요? 엔트로피우스님은…, 생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물론 ‘호모’라는 생물체의 습성에 관해 관심을 가지셨던 프로스페르무스님과 비슷한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엔트로피우스님의 관심사는 좀 더 넓고 깊었다고나 할까요? 호모뿐만 아니라 우주 모든 생명체의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셨으니까요. 엔트로피우스님은 그들이 가진 생의 약동과 지속력의 대척점으로서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겁니다. 심지어 엔트로피우스 님은 생명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원조차 그 생의 약동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셨죠. 생명이 죽음에 처하는 이유가 바로 우주의 근본 원리에서 비롯된 피치 못한 구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셨던 겁니다. 바로, 우주의 시간은 반드시 죽음의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 말입니다.”
“흠. 과연 엔트로피우스로군. 프로스페르무스조차 이런 깊은 생각엔 미치지 못했을 게야.”
“그렇습니다. 오직 엔트로피우스님만이 알고 계신 진실이지요. 그리하여 엔트로피우스님은 자신이 왕께 바칠 인간의 의미를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자기 죽음조차 우주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셨습니다.”
멤미우스는 상기된 표정으로 아겐티우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겐티우스는 몇 주 동안이나 골똘히 생각하다, 결국 포기하는 듯이 말했다.
“그게…, 그 장소는 정말로 전혀 기억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멤미우스는 뭔가 알아낸 듯한 표정으로 아겐티우스를 바라보았다.
“아냐, 나는 뭔가 알 것 같아. 자네가 내 묻는 말에 답변만 잘 해준다면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자네는 엔트로피우스가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인 이후에,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나?”
“저는 당시 ‘무덤’을 세워야 하는지조차 몰랐으니까요. 단지 엔트로피우스님이 전해 달라는 뜻을 잘 기억하고 돌아오는 우주선에 승선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엔트로피우스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아시다시피, 엔트로피우스님은 ‘죽음’ 상태였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묻는 건, 엔트로피우스의 ‘육체’가 어떻게 있었느냐는 말이야.”
“아, 그분의 육체라면, 누워 있었습니다.”
“땅 위에 말인가? 어떤 행성 위에?”
“그게, 행성 위가 아니었죠. 단지 텅 비어 있는 우주 공간이었습니다. 엔트로피우스님께서 특별히 고르신 위치였지만, 그곳이 왜 엔트로피우스님께서 고른 특별한 장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엔트로피우스가 어떻게 해서 우주 공간에 누워 있었다고 생각했나? 텅 빈 공간에선 누워 있든 서 있든 구별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도 그렇군요. 저는 어째서 엔트로피우스님께서 누워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멤미우스는 생각했다. ‘얼마나 길치이면 공간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전혀 없을 수가 있지?’
아겐티우스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항복하듯 두 손을 들었다.
“전 전혀 모르겠는데요. 단지 엔트로피우스님께서는 저와 같이 서 계시다가, 제게 최후의 말씀을 하신 후에 아래로 내려가듯 쓰러지신 것밖에.”
멤미우스는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그대가 왜 엔트로피우스가 누워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난 알 것 같아. 자연스럽게 엔트로피우스가 스스로 죽음을 들게 한 그 의미 있는 공간이 어딘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말이야.”
아겐티우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자네는 방금 ‘아래로 내려가듯’이라고 말했지. 말하자면 그 공간은 위와 아래, 즉 중력 방향이 존재하는 곳인 거야. 그리고 자네가 엔트로피우스가 누워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엔트로피우스의 육체가 중력 방향과 직교했기 때문이지.”
아겐티우스는 놀랐다.
“정말 그렇군요! 중력 방향과 육체가 직각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누워 계신다고 생각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자네에게 묻겠네. 엔트로피우스는 어째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눕게 되었을까?”
아겐티우스는 며칠간 생각하다 조심스레 말했다.
“눕는 자세가 최소의 위치에너지 상태라서일까요?”
“정답이야!” 멤미우스는 싱글벙글 웃었다. 아겐티우스는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껌벅였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네. 죽음이란 생물이 무생물로, 에너지가 최소의 상태로 바뀌는 변화이기 때문이야. 육체에 더 이상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때, 육체는 위치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공간으로 스스로 이루고 있던 물질을 재배열하게 되지. 그리하여 서 있는 생명은 죽음 이후엔 누운 육체가 되고, 곧이어 모든 육체의 분자들은 땅 아래로 끌려들어 내려가게 되겠지. 나는 생명체가 만든다는 ‘무덤’의 정체에 대해서도 대강은 이해하게 되었어. 육체가 아무리 최소 위치에너지 상태로 눕는 자세를 취한다고 해도, 그를 보살피던 주변인은 그의 육체를 더 아래로 향하게 하여 위치에너지를 감소시킬 여지가 남아 있음을 알지. 그리하여 그들은 땅 아래 묻는 방식으로 위치에너지가 육체를 더 깊은 곳으로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네.”
“그들은 아마 육체가 묻힌 곳이 어느 위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땅 위에 표식을 세우겠지요. 그게 바로 기념비로서 작동하는 무덤이란 것이군요.”
“그래, 아마 그 교주라는 자도 어떤 기념비를 세우는 형태로 엔트로피우스를 기렸을 테지.”
“그렇다면 멤미우스님께서는 엔트로피우스 님이 묻힌 장소가 어디인지 알고 계신단 말씀입니까?”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엔트로피우스가 죽음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를 선택하려 했다고. 엔트로피우스는 그러한 의미로써 위치에너지가 은하의 전역적 최소가 되는 곳을 선택했을 게야.”
아겐티우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곳은 바로 은하 중심이겠지요. 멤미우스님은 어떻게 그런 걸 아셨습니까?”
“그냥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을 떠시면서 도망가려 하시던 분과는 상당히 다른 분인 것 같군요. 마치 엔트로피우스 님만큼이나 대단해 보입니다.”
“흥, 됐네. 나는 엔트로피우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네.”
이런 말을 하는 멤미우스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무척이나 의기양양해 보였다.
“어쨌든, 문제의 교주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으로 가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