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엔트로피우스의 세계

페르펙티눔 왕과 그의 다섯 신하들 (8)

‘이게 텅 빈 공간이라고?’


은하의 중심에 다다른 멤미우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찼다. 온갖 우주 잡동사니와 재활용 불가능한 중력 먼지들, 폐기된 열에너지를 담은 쓰레기 봉지들이 둥둥 떠다녀 물질 반, 공간 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공간을 아겐티우스는 어찌하여 빈 공간이라고 착각했단 말인가? 그는 정말로 심각한 길치임이 분명했다. 갑자기 아겐티우스가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멤미우스님, 저기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심지어 별마저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마치 둥글고 검은 무엇인가에 가로막힌 듯했다.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사람의 키보다 열 배만큼이나 큰 직경의 검은색 공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겐티우스는 그곳으로 유영해 가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여기서 강한 중력이 느껴지는군요. 엔트로피우스님이 죽음을 맞으신 데가 바로 여기였던 모양입니다. 아, 아니? 여기 무슨 공 같은 건 뭐지?”


아겐티우스를 따라온 멤미우스는 그 시커먼 공을 발로 툭툭 찼다.


“아무리 길치라도 이렇게 큰 공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건가?”


아겐티우스가 쑥쓰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그땐 이 검은 공이 너무 깜깜해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멤미우스가 찬 공이 반대쪽으로 날아가다 무엇엔가 부딪힌 것처럼 튀어 올랐고, 공의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야, 누군가? 블랙홀을 그렇게 발로 차면 위험하다고.”


아겐티우스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멤미우스를 쳐다보았으나, 멤미우스는 아겐티우스를 보며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생각이 맞았어. 저자가 바로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을 지키는 자라고.”


그리고는 멤미우스는 공을 빙 둘러가 반대편을 향해 움직였다.


“이봐, 디비수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왕께서 찾으신다고.”


공 반대편에 있던 사람은 바로 다섯 번째 신하인 디비노 디비수스였다. 그는 블랙홀의 표면에 홀로그램으로 무엇인가를 쓰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멤미우스로군. 여긴 어쩐 일인가? 그보다, 자네는 메르센 소수가 완전수와 완전 일대일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또 이상한 짓을 하는 중이로군.”


“이상한 짓이 아니야. 내가 방금 인간의 의미에 대한 수비학적 계산을 막 끝마치기 직전이란 말이야.”


“수비학이라니? 이봐, 이미 왕께서 개최하신 경연은 끝났단 말이야. 자네가 뭘 가져가든, 이미 자네는 반역자라고.”


그러면서 멤미우스는 또다시 블랙홀의 표면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블랙홀은 풍선처럼 빙글빙글 돌며 감마선 폭풍을 일으켰고, 디비수스가 표면에 필산하던 홀로그램 수식이 약간 지워지고 말았다.


“멤미우스, 조심하라고! 결과를 내기 직전인데, 자네 때문에 계산 결과를 까먹게 생겼잖나?”


“디비수스, 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 계산은 좀 이따가 하고 얘기나 하세.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래, 내가 좀 늦긴 했지만, 나는 왕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의미를 조사하는 중일세. 이건 내 개인적인 관심사거든.”


멤미우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흠, 그렇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엔트로피우스가 여기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네. 자네의 이 계산과 엔트로피우스와의 죽음이 뭔가 관련이 있나?”


디비수스는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엔트로피우스 말이군! 그가 ‘죽음’이란 걸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의 마지막 장소에 찾아와 보았지. 여기에 오자마자 난 깨달았다네. 그의 숭고한 희생이야말로 인간의 의미에 거의 근접한 정답이라는 것을 말이야. 역시 엔트로피우스는 똑똑한 친구였어. 물론 나보다는 아래지. 그래도 엔트로피우스 덕분에 내 연구 방향을 꽤 정답에 근접하게 수정할 수 있었지. 그래서 나는 죽음을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그의 뜻을 기리고자, 이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네.”


말을 끝마치고 난 후 디비수스는 블랙홀을 수평축 회전 방향으로 살살 돌렸다. 그러자, 블랙홀의 북극점에 서 있던 장엄한 검은 모노리스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아래에 엔트로피우스의 육신이 잠들어 있다는 표식이네. 내가 직접 블랙홀을 파고 그를 묻었다네. 엔트로피우스의 육체는 위치에너지가 정확히 마이너스 무한대로 은하의 중심인 곳에 잠들어 있지.”


한동안 말이 없던 아겐티우스가 모노리스 앞에 서더니 강철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디비수스와 멤미우스는 아겐티우스를 위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간소한 의식이 끝나자마자, 디비수스는 멤미우스를 향해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대체 자네는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이곳에 찾아온 겐가?”


멤미우스가 받아쳤다.


“지금 왕국에서는 백성들이 왕의 권위에 불만을 품고 있어, 반란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네. 그 백성들은 ‘죽음의 종교’를 제창한 교주를 따르고 있지. 그 교주라는 자는 어떤 자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네.”


디비수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척을 했다.


“그렇군. 왕국에 큰일이 났구먼. 왕께서는 그런 역적 모의를 무척이나 싫어하실 텐데. 그런데 자네가 여기까지 찾아온 건 그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바로 자네가 그 사건의 주동자라 생각했거든! 내 생각에 소문의 무덤은 엔트로피우스의 무덤이고, 그 교주가 바로 자네라고 생각했으니까.”


디비수스가 어색하게 되물었다.


“무슨 소린가? 난 여기에서 이렇게 조용히 계산만 줄곧 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왕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재주를 부린단 말이야?”


“왜냐하면 디비수스 자네는 예전부터 이상한 꿍꿍이가 많았잖은가? 왕국에서 조직적으로 인간들을 부릴 수 있는 자가 다섯 신하 중 누구냔 말이야?”


“음…, 비타스? 아니면 프로스페르무스? 자네는 택도 없을 것 같고.”


멤미우스는 치욕감에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지만, 비타스와 프로스페르무스는 감옥에 있다네.”


“아이쿠, 그건 몰랐네.” 디비수스가 연극적인 말투로 말했다.


“아니야, 난 자네가 왕국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예전부터 알았어. 아마 신자들에게 양자 얽힘 지령도 내렸겠지. 이걸로 말이야!”


멤미우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이미 관측되어 물질화된 양자 기계 비둘기였다. 디비수스가 그걸 골똘히 보다 말했다.


“아하…, 이건 내 비둘기로군. 비둘기로 옛 친구들과 통화라도 좀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보다시피, 이곳은 너무 심심하거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증명해 보게. 자네는 왜 돌아오지 않았나?”


“말했잖은가. 난 엔트로피우스의 죽음을 토대로, 인간의 의미를 찾는 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멤미우스는 어깨에 힘을 주며 디비수스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렇다면 설명해 보시지! 지금까지 자네가 찾아낸 인간의 의미를 말이야!”


멤미우스가 디비수스의 미간을 노려보는 동안 디비수스는 멤미우스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해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그의 이마에서 냉각수가 삐질 흘렀다. 결국 디비수스는 포기한 듯이 말했다.


“좋아. 자네가 이 먼 곳까지 왔으니 특별히 얘기해 주겠네. ‘완전수’에 대해서 말이야.”


이전 07화 광부의 죽음, 그리고 도망쳐버린 멤미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