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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만 이렇게 심하게 똑똑하게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와 대니 브라워의 『부정 본능』을 읽고

책에도 나오듯이, 인간만 “심하게 똑똑하다”는 사실은 진화론에서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물론, 누군가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만들었다고 하면 다 해결되는 일이긴 하지만, 시간 아까우니 말을 말자.) 우리는 어느 정도 똑똑한 동물들을 알고 있는데, 예를 들어 까마귀, 코끼리, 고래, 유인원(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보노보) 등이 있으며, 이런 동물들의 예시를 보면 높은 지능의 진화는 (눈의 진화, 다리의 진화처럼 매우 흔히 일어나는 진화에 비해)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 일이지만,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생존에 매우 도움이 되는 일인 듯하다.

그런데 인간 지능의 진화와 관련된 수수께끼는 이런 수준의 얘기가 아니다. 언어를 만들고, 철학과 사상을 논하고, 과학과 공학을 발전시켜, 순식간에 인구폭증을 일으켜 지구온난화와 여섯 번째 멸종을 일으킬 정도로 지구의 상태를 바꿔놓는 능력을 지닐 정도의 ‘슈퍼지능’에 대한 얘기다. 이 슈퍼지능은 왜 생물 진화의 50억년 역사에서 단 한번,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일어났는가 하는 얘기다.


Denial - Ajit Varki and Danny Brower


'메이팅 마인드' 가설에 대한 책, The mating Mind - Geoffrey Miller

학계에서 시도해 본 이론으로는, ‘생존’이 아닌 ‘번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해서 진화하는 기제(성선택)을 통해, 똑똑함이 섹시함으로 보여지는 진화적인 동력이 일어났다고 설명하는 제프리 밀러의 ‘메이팅 마인드’ 가설이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메이팅 마인드 가설도 우리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 주진 못한다. 그도 그런 것이, 메이팅 마인드 가설은 왜 슈퍼지능이 인간에게만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슈퍼지능은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불필요하게’ 진화하였는가를 설명하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시길. 말하자면 코끼리나 고래 수준을 초과하는 슈퍼지능은 생존에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메이팅 마인드 가설의 이 얘기 때문에 부정 본능 가설과 메이팅 마인드 가설은 양립할 수 없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자신만의 가설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부정 본능’이다.


가설을 따라가 보자.


1. 인간의 ‘슈퍼 지능’은 사회성, 특히 ‘완전한 ToM(Theory of Mind)’이라고 불리는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2. 그런데 완전한 ToM 이외에, 인간의 마음 속에는 동물이라면 응당 가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가지고 있다.

3. 인간이 아닌 어떤 가상의 종이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완전한 ToM’을 진화시키는 바로 그 순간, 남이 죽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죽을 것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죽음에 대한 이해는 동물의 기본 본능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건드리게 된다.

4.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완전한 ToM을 동시에 가진 이 비극적인 개체는, 우울증과 같은 비관적인 정신병 때문에 번식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식을 낳지 못해 진화하지 못할 것이다.

5. 그런데 인간은 완전한 ToM을 가지고 진화했다.

6.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한 ToM을 진화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 동시에 ‘부정 본능’이라는 마음까지 우연적으로 진화시켜서 살아남은 것이 틀림없다. ‘부정 본능’이란, 미래에 닥칠 죽음에 대해 별 거 아니라고 과소평가하는 기제를 말한다.


여러 가지 반박을 들고 싶다.


첫번째, 부정 본능 진화 기제에 대한 가설과 증거가 없다. 물론 저자의 말로는 ‘부정 본능’이 나타나는 여러 인간 현상에 대한 심리적 증거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나는 부정 본능이 어떤 적응적 압력을 받아서 진화하였는지가 궁금했다. 나 같으면 이런 가설을 세워보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던 그 환경은 정글에서 사바나로 아동하던 아프리카의 중위도 지역이었고, 그 압력은 프로토-호모 사피엔스가 새로운 환경에 대해 겁먹지 않고 (죽음을 감수하고) 개척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죽음을 감수한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부정 본능이 강한 개체였고, 부정 본능이 약한 (죽음에 겁먹는) 개체는 정글에 머물러 침팬지가 되었다. 이 가설에 대해 증거도 세울 수 있을 텐데,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이 왜 전 세계에 퍼져 살게 되었는지, 특히 베링 해협을 건너거나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진출하거나 하는, 다른 동물로서는 말도 안되는 환경을 감내한 사례들이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내 생각이고 만약 내가 부정 본능 가설을 지지하고 책을 쓴다면 이렇게 쓴다는 거지만, 난 일단 부정 본능 가설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려 한다.


두번째,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부정 본능 뿐만 아니라 ‘죽음 과장 본능’도 있다. (‘죽음 과장 본능'이란, 실제로 죽을 위험에 처하지도 않는데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을 말한다. 예는 각자 들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니, 굳이 예를 들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부정 본능의 증거라고 여러 사례를 들었는데, 이렇게 백과사전 식으로 수집하는 증거는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 자신의 뜻에 맞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를 하나하나 반박해 감으로써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는 것이 옳은 절차다.


세번째, 행동경제학 실험 중의 하나로, ‘미래 할인’이라 부르는 이론이 있다. 지금 당장 1달러를 받을 것인가 1주일 후에 x달러를 받을 것인가 하는 실험이다. x=1이면 아무도 일주일 후에 받지 않을 것이며, 적어도 2~3달러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즉 1달러를 “빼앗으면” 죽음 부정 본능 케이스랑 얼추 비슷한 현상이 된다. 아마도 1달러 빼앗기 실험을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 빼앗기기보다는 일주일 후에 빼앗기기를 선택할 텐데, 그렇다면 부정 본능 가설과도 일치하는 증거가 된다. 현재의 죽음보다는 미래의 죽음을 더 과소평가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문제는, 이 행동경제학적 부정 본능 현상이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 예상된다는 것이다. 만약 침팬지나 고래에게 이런 실험을 시행했을 때 그들에게도 같은 ‘손실에 대한 미래 할인’ 현상이 일어난다면, 인간의 슈퍼 지능과 관련된 부정 본능 가설은 무너져 내리는 셈이다. 물론 침팬지에게 이런 실험을 시행한 연구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다. 그러나 책을 쓰려면 이 정도의 증거는 채택을 했어야 나같은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손해에 대한 미래 할인’, 즉 부정 본능 기제가 동물에게도 있을 것이라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번째, 제프리 밀러의 메이팅 마인드 가설은 인간의 슈퍼지능이 생존에 ‘불필요할 정도로 과하다’고 말한다(공작의 꼬리 같은 것이다). 그런데 부정본능 가설은 지능은 높으면 높을 수록 더욱 좋기 때문에, 부정 본능을 진화시키면서까지 인간이 슈퍼지능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 둘은 양립불가능하다. 만약 누군가가 ‘불필요한 슈퍼지능 가설’을 지지한다면, 메이팅 마인드 가설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생각도 그렇다.


이렇게 비판적인 의견을 쓰긴 했지만, 나의 비판은 이 책이 ‘틀렸다’가 아닌, ‘증거가 부족하고 할 수 있는 증거 수집 절차를 안했다’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사항이다. 저자가 후속 책을 낼 때, 증거와 실험 부분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례를 가져 왔으면 좋겠다. 앞서서 얘기했듯이,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로 퍼진 현상이 이 가설로 어느 정도 설명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책이었으며, 저자들의 전공(둘 다 심리학보다는 분자생물학 쪽이다.)에 약점이 있음을 스스로 알고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쪽에서 좀 더 풍부한 증거와 실험을 수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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