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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Oct 18.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복구 작업

 횡성의 외진 시골 마을의 복구 작업은 더뎠다.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지금은 약한 비와 가끔 불어오는 바람뿐이었지만 피해는 상당했다. 

눈을 돌리면 눈길이 닿는 곳 모두 폐허였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모두 열 채의 집이 있었다. 

석헌과 파랑이 유실된 도로에서 들었던 소리는 산사태 소리였고, 엄청난 양의 토양과 나무가 

인가를 모두 덮쳤다. 

마을 주민은 모두 17명. 

현재 절반 정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지금까지 모두 사망. 

유실된 도로와 범람한 하천으로 인해 마을 안쪽까지 복구 작업이 진행되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흙으로 뒤덮인 마을을 본 석헌은 달려갔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이 샘솟았다. 

입에 작은 라이트를 물고 손으로 정신없이 흙더미를 팠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토사는 마을 입구까지 거침없는 기세로 휩쓸었고, 석헌이 제아무리 노력한들 

야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인가까지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석헌은 보이는 대로 흙을 펐다. 

손은 까져 피가 나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누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파랑 역시 석헌과 함께였다. 

그렇게 둘이 흙을 퍼 나른 지 한참 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지만, 그들 역시 

끊긴 도로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석헌은 절망했다. 이번에는 알고 있었지만,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난 후에야 사람들이 도착했지만 약해진 지반과 여전히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구조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무리하게 강행하다가는 산 사람마저 죽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 날이 밝고 사람들이 더 도착했다. 그사이 비는 약해졌고, 어둠이 걷혔다. 

마을의 모습은 석헌이 본 환영과 똑같았다. 

산사태 전에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부터가 인가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피로와 실망감이 석헌과 파랑을 엄습했다. 


 “신고하신 분인가요?”


멍하게 구조작업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석헌과 파랑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119 구급대원. 석헌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가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석헌과 파랑은 그에게 이끌려 급하게 친 간이천막으로 이동했다. 


 “이곳 주민이세요?”


석헌과 파랑의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이 들어가자 덜덜 떨던 몸이 한결 나아졌다. 


 “……아니요.”


잠긴 목소리로 석헌이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어요? 도로가 끊겨서 차도 들어올 수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머리를 굴려야 했지만 피곤함에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파랑이 구급대원에게 수화로 답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걸어오는 모양을 표현했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파랑의 수화를 본 구급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대원이 종이 한 장을 들고 간이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마을 주민 명단이야. 혹시 이 중에 아는 사람 있어?”


그의 말에 낙담으로 정신을 놓고 있던 석헌이 고개를 들었다. 

명단을 보던 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몇 명만. 그런데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대부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서.”

 “……저도 명단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석헌이 엉거주춤 일어나 대원에게 말했다. 

종이를 들고 있던 대원은 석헌을 보고 종이를 건네줬다. 


 “이곳 주민이세요?”


똑같은 질문을 한다. 석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눈으로 명단을 훑어보았다. 

석헌과 파랑의 경험과 같다면 누군가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김정희(24)/ 여


 “이 사람…… 알아요?”


석헌이 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리켜 대원에게 보여줬다. 

대원이 이름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외진 곳에 이렇게 젊은 여자가 있었나?”


석헌은 그녀를 기억했다. 김정희.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던 누나. 

황 실장의 꼬임에 넘어간 누나. 그녀가…… 혹시 살아있을까?


 “본 적 있어요?”


대원이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눈을 굴렸다. 


 “아저씨는 이곳에 살아요?”


석헌이 다급하게 대원에게 물었다. 


 “아니요, 이 마을은 아니고 예전에 옆 마을에요. 지금은 소방서 근처로 옮겨서 혼자 살아요. 

이 사람은 어머니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그런데 왜요? 이 사람이 특별히 걸리는 게 있어요?”


어느새 파랑이 가까이 와서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린다. 

석헌과 함께 시설에서 생활했던 정희의 사정을 알고 있던 파랑은 석헌을 붙잡더니 고개를 흔든다. 

석헌이 종이를 돌려주고 파랑의 팔을 잡더니 천막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아니라고 생각해?”


파랑은 말도 안 된다는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왜?”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의 석헌을 바라보며 파랑은 여전히 고개를 흔든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글자를 입력한다. 


 -망상이에요. 그 언니는 죽었다면서요.

 “죽은 걸…… 내가 직접 본 게 아니잖아. 실제로는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


석헌이 간절한 눈빛으로 고집스레 말했다. 


 “누나도…… 죽지 않고 살아서 나처럼 볼 수 있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얼굴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로 작게 말하는 석헌의 말에 파랑은 마음이 아팠다. 

왜 안 되겠는가?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는 것이 왜 안 될 말인가. 

파랑은 석헌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석헌은 부드럽게 파랑의 팔을 떨치고 터벅터벅 걸어 의자에 앉았다. 

파랑도 석헌의 뒤를 따라갔다.      


더딘 구조작업이 이어졌다. 석헌과 파랑은 기도하며 생존자 소식을 기다렸지만 도착한 소식은 

모두 우울한 이야기뿐이었다. 작은 마을이지만 중간마다 빈집이 많았다. 

들리는 소리로는 산사태가 나면서 빈집이 같이 쓸려 내려와 산에서 떨어진 집도 피해가 컸던 모양이다. 

어느덧 구조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람은 모두 사망자였다. 


 “김정희라는 사람이요.”


대원이 남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을 꺼냈다. 

그의 얼굴은 피로감에 젖어있었다. 


 “아까 잠깐 어머니랑 통화했어요. 이름은 처음 듣는대요. 하지만 나이로 보니 아마 중국에서 

시집 온 젊은 여자가 아닐까 하시더라고요. 한 명 있었대요. 사망자 대조도 했어요. 한국으로 시집 와서 개명을 한 것 같아요.”


석헌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져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누나가 아니겠지. 그때 대원에게 무전이 왔다. 

급한 일인지 무전을 받자마자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대원! 이쪽으로 와! 생존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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