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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Oct 22.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유일한 생존자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아이뿐이었다. 

산자락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 집은 무너져 내렸고 부모는 모두 사망. 

아이가 발견된 곳은 작은 방이었는데 산에서 가까웠지만, 집 뒤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유일하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담이 넘어지고 흙이 집을 덮친 것은 마찬가지. 다만 피해가 덜했을 뿐이다. 

아이는 가느다란 숨이 붙어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이 아이마저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을지 모른다. 

무너진 담벼락 옆으로 조그만 틈이 벌어져 있었고, 아이의 몸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빗물과 넘쳐나는 흙으로 몸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젖고 더러워진 옷과 이불에 둘둘 말려 있었다. 

저체온증에 의식도 없었다. 아이는 발견 즉시 응급처치를 받은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천막에서 생존자의 소식을 들은 석헌과 파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존자. 

이번에도 유일한 생존자가 나왔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떠한 상태일까? 석헌과 파랑과 같을까?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다. 설마…….


생존자가 나오자 간이천막은 분주해졌다. 

생존자에 대한 정보를 찾기 바빴다. 아이의 신원은 금세 파악되었다. 남여리. 9세. 

부모와 함께 이곳에 이사 온 지는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만 아홉 살이면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현장에 남아있는 대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대원에게 물었다.


 “그렇지. 우리나라 나이로 열 살이니까 3학년?”


확실하지 않은 듯 눈을 굴리며 대답한다. 


 “그런데…… 왜 학교 기록이 없죠?”

 “학교 기록이 없다고? 왜?”

 “그러게요. 없네요. 이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뻔하잖아요. 한 곳밖에 없어요. 

방금 신원확인 차 학교에 전화했는데 그런 학생이 없다고 하네요?”


한 대원이 벌떡 일어서더니 서류를 들고 있는 다른 대원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같이 내려다보았다. 


 “없대? 정말?”

 “네. 없대요.”

 “읍사무소에서는 뭐래?”

 “아직 담당자랑 통화를 못 했어요. 그 사람이 사는 곳도 난리가 났나 보더라고요.”

 “그래? 연락오면 나한테도 알려줘.”

 “네.”


간이천막 한쪽에서 대원들의 대화를 듣던 석헌은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만 아홉 살인데 학교를 안 다닌다고? 대체 왜? 

때마침 화장실을 다녀오던 파랑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서류를 보고 있던 대원이 파랑과 석헌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돌아가셔야죠?”


석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가려고요. 그런데 여기 오는 길에 차를 길가에 세워뒀어요. 혹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아, 네. 그러죠. 이쪽으로 오세요.”


파랑과 석헌은 대원을 따라 천막에서 나왔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도로가 유실돼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네, 어쩔 수 없죠. 감사합니다.”


파랑과 석헌은 대원을 따라 차를 타고 이동했다. 


 “10분 정도 더 걸릴 거예요. 아, 잠깐만요.”


대원에게 전화가 왔다. 


 “네, 119구급대원입니다. 아! 네.”


석헌은 숨죽인 채 대원의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네.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기록이 없더라고요? 네. 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또 확인할 사항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통화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석헌을 파랑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아이요? 살아남은 아이.”

 “아, 네.”


대원이 슬쩍 미소를 짓더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학교에 안 다닌 거죠?”

 “네? 아……. 네…… 뭐…….”


말을 아끼고 있다. 방금 누군가 통화했고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석헌과 파랑은 민간인에 불과했다. 정보를 노출 시킬 필요는 없다. 

대원도 알고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어? 혹시 저 차예요?”


대원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헌은 고개를 쭉 빼고 자신의 비스토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도로 안쪽에 세워둔 비스토는 절반 정도가 흙에 파묻혀 있었다. 저 상태로는 운전석에 탈 수 없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흙과 나뭇가지, 작은 돌들이 비스토의 왼쪽을 모두 뒤덮고, 오른쪽 아래 바퀴와 

휠 일부까지 덮어버렸다. 석헌은 망연자실한 채로 비스토를 바라보았다. 

태풍의 한가운데, 비가 퍼붓고 있는 도로에 비스토를 버려두고 걸어갔을 때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막상 눈으로 흙에 덮인 비스토를 보니 맥이 풀렸다. 


 “……레커차 부르실래요?”


대원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구급대원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네. 구급대원……. 아! 정말요? 깨어났다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리로 가보겠습니다.”


구급대원이 전화를 끊고 석헌과 파랑이 앉은 뒷좌석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


 “저는 서로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깨어났다고 하네요.”

 “소방서에서 병원은 멀어요?”

 “아뇨. 가까워요.”

 “그럼 저희도 그쪽으로 데려다주세요.”

 “……차는 어쩌시고요?”

 “일단 얘가 몸이 안 좋아 보여서 진료부터 받으려고요. 차는 그 후에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석헌이 파랑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원이 고개를 더 돌려 파랑을 바라보았다. 

파랑은 어제부터 몸이 으슬으슬 한 것이 몸살이 나려는 것 같았다. 

대원과 눈이 마주친 파랑은 힘이 없다는 듯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제 차로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병원까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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