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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다?

by 아내맘
친구 사귀다.jpg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 돼서 아이 옆 반 친구들이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같이 등교하는 것만 봐도 “너네 사귀지?” “얘네들 사귀는 거 확실한데?” “사귀는 거 맞지?” 등의 얘기가 들려왔다.


‘뭐야? 벌써 저런 얘기를?’


고백과 사귄다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 내심 놀랐지만,


사실 ‘사귄다’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것도 어쩌면 지금 아이들 세대를 이해 못 하는 꼰대 어른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사귄다’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부모들이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면서 새 학기 때 가장 궁금해하는 친구에 관한 질문!


“오늘 친구 몇 명 사귀었어?”를 흔하게 물어보지 않는가.


아이로서도 헷갈리지 않을까?


“엄마가 친구 사귀라면서.”

“아~ 그런데... 그 ‘사귀는 것’과 남자친구, 여자친구 성별로 ‘사귄다’...” 여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헷갈리는 것이다.


‘조금 더 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리 아이도 작년 1학년 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OO이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친구 하자’고 해볼까?”


아이는 부끄러운지 그 친구에게 계속 얘기를 못했다.


그렇게 1학년 1학기가 지나가고 2학기 어느 날 나에게 활짝 웃으며 얘기했다.


“엄마 나 이제 용기가 났어. OO랑 이번에 방과후수업을 같이 듣는데 ‘친구 하자’고 해볼게.”

“윤우야 지금 2학기고... OO이는 이미 너랑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네가 갑자기 ‘친구 하자’고 하면 당황하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친구 하자’고 말하고 싶어”

“그럼, 용기내서 말해 봐.”


그 친구 대답도 궁금했다.


어떻게 됐을까?


“윤우야 말했어?”

“응. 그런데 추석 지나고 대답해준데...”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돌아다녔다.


“너 ‘사귄다’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친.구.하.자’고 한 거 맞지?”

“응!”


아이들 세계는 어렵다. ‘친구 하자’고 했는데 왜 대답을 미룬 걸까?


그렇게 아들은 2학년이 되었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이 “친구들과 손잡고 걸어요”라고 해서 친구들과 손잡는 것도 익숙하고 친숙했는데

난 초등학생 윤우에게 ‘친구 손 잡지 마!’라고 당부했다.


초등학교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손잡는 것도... ‘사귄다’의 말처럼 조심스럽다.


“윤우야 유치원 친구 OO랑 손잡지 마!”

“왜?”

“이제 너도 컸고 OO이도 컸으니 부끄러울 수도 있어. 혹시라도 다른 친구들이 ‘사귄다’고 놀리면 어떡해?”

‘사귄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대화에서 나왔다.


아들은 ‘그게 뭐 대수냐. 사귀냐고 놀리면 사귄다고 하면 되지’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정말 설명하기 어렵네...


내 머리를 짜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윤우야 OO이가 얼마 전에 어떤 친구한테 고백받았다는데, 거절했대”


윤우가 안타까운 듯이 “OO이는 왜 거절한 거야?”라고 물었다.


“음... 윤우야, 친구는 사귀는 게 맞는데... 이제 너희들도 크면서 남자, 여자로 나뉘고 이렇게 남녀가 사귄다는 건... 한 사람만 친하게 지내는 거야. 알았지?”

“너 한 사람만 친하게 지낼 수 없잖아. 그리고 네가 한 사람만 친하게 지내면 너랑 친해지고 싶은 또 다른 친구가 ‘너한테 친구 하자’고 말 못 하지 않을까?”


아이는 이해한다는 듯 더 질문하지 않았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 가장 어렵지만, 뒤집어보면 가장 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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