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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04. 2021

생명 나눔의 이유

# 생명 나눔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엄마는 당신 생명의 조각을 한 조각씩 떼어 자식을 키운다고 합니다. 우리들 몸속에는 금빛 찬란한 엄마가 들어 있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장, 아무 말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엄마를 두 손과 마음으로 안아 보세요.(이상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 중)


엄마처럼 자신의 생명 조각을 나누며 산다면, 길에서 나의 생명 조각을 품은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내가 품은 생명 조각의 주인을 만나도 참 반가울 것 같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면 참 좋겠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생명의 기운을 얻을까요. 다른 생명처럼 햇빛과 바람, 공기를 통해 얻겠지요. 그러나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기운을 얻습니다. 아직까지의 의학기술로는 사람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생명 조각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기등을 기증하려는 사람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고, 자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장기등을 기증하려는 사람은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고, 법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국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승인 관련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승인 판단을 위하여 법정서식에 따라 [장기 기증 사유]를 묻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장기 기증 사유]에 대한 답변들 중 일부입니다.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ㅇ 사랑하는 남편이므로 제 모든 장기를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만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남편을 살리고 싶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간을)

ㅇ 수술하는 것은 무서우나,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것이 더 무서웠습니다. (미혼의 딸이 아버지에게 간을)

ㅇ 시아버님이지만 아빠 같은 분이셔서 망설임 없이 드리기로 했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간을)

ㅇ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끝까지 함께 살고 싶어서. (딸이 엄마에게 간을)

ㅇ 나를 낳아준 부모니까, 당연히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신장을)

ㅇ 자식으로서 당연하므로. (딸이 아빠에게 신장을)

ㅇ 나의 생명, 나의 분신이기에. (엄마가 딸에게 신장을)

ㅇ 너무 소중한 우리 아들이라서. (엄마가 아들에게 신장을)

ㅇ 엄마와 함께 오래 지내고 싶어서, 엄마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몽골인 딸이 엄마에게 간을)

ㅇ 남편이 아파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신장을)

ㅇ 우리 처형이 너무 안타까워서. (제부가 처형에게 간을)

ㅇ 장남으로서 동생들에게 맡기지 않으려 합니다. (큰아들이 엄마에게 간을)

ㅇ 투석을 하는 남편의 힘든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서,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내가 남편에게 신장을)

ㅇ 아들이니까.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ㅇ 가족이니 당연히. (이부형제 동생이 형에게 신장을)

ㅇ 누나의 아픈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고, 누나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남동생이 누나에게 신장을)

ㅇ 가슴이 아프고, 아내를 잃을 것 같아 두려워. (남편이 아내에게 신장을)

ㅇ 아버지니까 아들이니까.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ㅇ 가족이며, 내 사람이라서, 당연해서, 행복을 위해서, 사랑해서. (남편이 아내에게 간을)

ㅇ 아버지의 남은 여생의 행복을 위하여,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ㅇ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피곤하지 않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내가 남편에게 간을)

ㅇ 엄마의 아픈 손가락인 막내 오빠라서 제가 기증합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신장을)




아, 그렇습니다. 굳이 [장기 기증 사유]를 따로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유를 대기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의 생명 조각을 나누는 행동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냥 본능일 뿐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남은 생명 조각들을 나누어 주고 떠나는 아름다운 사람도 많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나의 생명 조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엄마가 자신의 생명 조각들을 떼어 우리를 키웠듯이 말입니다. 


* 앞으로는 [장기 기증 사유]를 적는 칸이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생명을 나누는데 이유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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