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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14. 2021

라일락 말락

# 조급하지 않고 피는 꽃

# 1


"나는 아직 꽃필 준비가 안되었는데, 다른 꽃들은 다투어 피고 있어요."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가나무길 텃밭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불쑥 라일락이 물었다. 흐드러진 벚꽃 사이를 막 지나던 참이었다.


놀랐잖아. 그렇다고 남들 따라서 서둘러 피지는 마. 봄이 올 거라고 알려주는 꽃도 있고, 이제 봄이라고 말해주는 꽃도 있어. 그리고 봄은 가고 여름이 오는 중이란 걸 직접 보여주는 꽃도 있고. 모두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꽃필 준비를 해온 나무들이란다. 너도 뒤지지 않고 열심히 준비를 해 왔잖아. 그러면 된 거야. 꽃은 다른 꽃에게 이기려고 피지 않아. 자기만의 준비가 끝나면 축포처럼 터져, 향기를 세상에 퍼뜨리는 거지. 지금 네가 할 일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지, 네 주변에  있는 꽃들을 따라 세상을 사는 건 아니잖아. 너만의 꽃으로 피었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꽃 피우는 연습을 해두는 게 어떨까.




# 2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한다.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란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란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 강준민 작가의 '뿌리 깊은 영성'에 나오는 내용이다.


너그럽게 살기, 일과 사람과 세상에 대하여 너그러워지기. 이렇게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조급해하는 나를 본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이 속도를 내게 만드는 것 같다. 내 안에서 누가 자꾸만 힘을 내라 재촉하고. 방학이 끝나갈수록 조급 해지는 밀린 숙제처럼 그렇게 세상 일을 대하는 모습이 염려가 된다. 아무리 속도를 낸들 세월을 제칠 수는 없고, 단지 동종의 무리보다 조금 빠를 뿐인데 말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지구는 23시간 56분 4초마다 회전하며, 초당 29.8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속도를 내어 어떡하자는 것일까. 한밤중에 다리에 쥐가 나 벌떡 일어나야만 했던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조급하게 살아서 생기는 증세다. 파이팅은 어쩌다 한번 가속이 필요할 때 하는 거지, 일 년 365일 내내 가속하며 사니 어찌 쥐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이외의 것들과의 속도 차이를 인정하고 나의 속도를 찾자. 꽃들은 자기만의 준비를 마치는 대로 피는 것이지, 경쟁하며 피는 게 아니란 것을 라일락에게서 깨닫다.




# 3


가장 느린 지름길


"소의 걸음이 느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소는 절대로 뒷걸음질 치지 않거든요. 그리고 오래갑니다. 오래가는 것이 결국에는 가장 빨리 가는 것임을 우리 직원들은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윤동한 한국 콜마 회장이 한 말이다. 


자기는 얼마나 높이 가느냐에 연연하지 않고, 얼마나 멀리 가느냐를 중하게 여긴다던 어떤 분을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가 가는 길이 항상 곧은길은 아니다. 때로는 극도로 굽은 길을 만날 때도 있는 것이다. 빨리 갈 욕심에 서둘러 달리다가는 십중팔구 길에서 이탈하고 만다. 멀리 오래가지 못하고, 길 밖에서 좌절하는 것보다 속도를 줄이고 굽은 길을 조심스레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라일락 곱게 핀 들길에서 느림이 빠름보다 빠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라일락 필락 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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