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밤 11시 42분.
오늘도 나는 냉장고 앞에 선다.
배가 고픈 건지, 그냥 허한 건지.
손은 손잡이를 향하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느낌이다.
‘뭘 좀 먹을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뭘 좀 찾을까?’에 더 가깝다.
마치 냉장고 안에 인생의 해답이라도 있을 것처럼
허리를 굽힌 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만약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이라도 발견한다면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괜찮은 날일 테고,
단지 썰렁한 반찬통 몇 개만 있다면
괜히 더 외로워질 것 같다.
그러나 냉장고는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다만 ‘또 왔네?’ 하는 듯한 LED 불빛만이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거, 네 허기는 위장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 거야.”
나는 알면서도 또 문을 열었다.
차라리 너라도 날 좀 위로해 보라고.
그 차가운 불빛마저 오늘은
괜히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이러다 나 냉장고랑 대화라도 하겠다.
“야, 나 왜 이렇게 허전하냐?”
“글쎄, 감정을 냉동실에 쑤셔 넣고 방치하니까 그렇지.”
“…야, 너 김치 냄새나는 거 알아?”
“…….”
가끔은 위로가 음식보다
침묵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
묵묵히 다 받아주고,
필요할 땐 시원하게 꺼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치킨 다리 하나 꺼내며 깨닫는다.
살다 보면, 위로가 튀김옷을 입고
돌아오는 날도 있는 법이니까.
"고마워, 냉장고야!"
오늘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어서.
“지이이이잉.”
노란 불빛 아래,
전자레인지 속에서 돌고 있는 치킨 다리 하나.
그 익숙한 소음마저도
오늘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