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줄
점점 잉크가 흐려졌고
문장도 덜 힘 있게 써졌어
그날 내가 마지막으로 쓴 말
"괜찮을 거야"
…나 그 말, 믿고 싶었어
- 마지막 줄 -
나는 알고 있었어.
내가 들고 있던 그 펜의 잉크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는 걸.
글씨가 잘 안 나오면 자꾸 꾹꾹 눌러 쓰기도 하고,
종이 귀퉁이에 동그라미를 몇 번씩 그려서
잉크를 억지로 끌어올리기도 했지.
그 모습이 꼭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어.
조금 지쳐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싶은 마음.
사실 그 펜은
꽤 오래전부터 무리하고 있었을 거야.
그럼에도 내가 그것을 버리지 않았던 건
그저 습관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잉크가 줄어든다는 건
단순히 글씨가 옅어진다는 뜻만은 아니잖아.
그건 내 하루가
조금씩 힘을 잃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거든.
처음엔 글씨가 힘이 있었어.
‘할 수 있어.’
‘오늘도 잘해보자.’
‘버텨보자.’
그 문장들은 작지만 단단했고,
마치 하루의 깃발처럼 종이에 꽂혀 있었지.
그 안엔 발버둥 치며 애쓰는
나의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고 믿어.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글씨는 점점 흐려졌고,
문장들은 조금씩 짧아졌어.
어떤 날은 마침표가 희미했고,
어떤 날은 그냥 쉼표만 남아 있기도 했어.
마지막 줄쯤에 이르러서는
내가 눈을 찡그리고 봐야 겨우 읽을 정도였지.
그런데도 그 말은 기억나.
“괜찮을 거야.”
그 말을 적기 위해
나는 마지막 남은 잉크를 허공에 흔들어서 짜냈어.
그 한 문장을 적기까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 몰라.
그 문장은 누구에게 향했던 걸까?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흐릿한 글씨라도 좋으니
한 번은 적어두고 싶었던 말.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지만
글은 종이 위에 남는다는 걸
나는 잘 알잖아.
그래서인지
사라질까 봐, 잊혀질까 봐,
그날의 결심도, 그날의 불안도
그냥 흔적 없이 흘려보내기 싫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끝까지, 마지막 줄까지 써 내려간 거야.
볼펜의 잉크는 그 문장을 남기고 완전히 끝났고,
종이 한 장도 가득 채워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줄이
내가 남긴 문장 중 가장 진심이었다고 믿어.
희미해서 더 조심스럽게 읽게 되는 말.
흐려서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되는 문장.
그 말이 정말로
나에게도 위로였기를.
단지 적어본 말이 아니라,
정말로 믿고 싶었던 마음이었기를.
나는 아직도 그 마지막 줄을 기억한다.
글씨는 희미했지만,
그 마음만은
지독하게 선명했으니까.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