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잡문인 Oct 13. 2019

튼튼한 다리

  바리스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으음, 커피를 만드는 실력과 열정? 손님들에게 친절한 서비스 태도? 성실함? 흠, 무엇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건 없다. 그래도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라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나는 대답한다. “으음… 아마도 튼튼한 다리?” 


  오래전에 어떤 채용공고에서 본 내용인데, “하루 8시간 동안 서서 일 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 끊임없이 탬핑을 할 수 있는 튼튼한 팔. 설거지를 장시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다부진 손. 다양한 손님들과 마주해도 잃지 않는 미소를 가진 인재를 채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으흠, 아무래도 너무 완벽한 인재상을 적어 둔 게 아닌가. 튼튼한 다리와 팔, 좋은 미소를 가진 인재를 찾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하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저 채용공고를 보고 “아주아주, 일하는 기계가 필요한가 보군.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완전 악덕이네.”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럼 그럼, 카페에서 하는 일의 9할은 모두 튼튼한 다리와, 팔을 필요로 하지. 다 그렇지. 꼭 필요한 자질이야. 그럼 그럼”하고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거 완전 악덕이 되었군.


  카페에서 일을 하고 배우면서, 특별한 전문성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커피 전문가가 되고 싶은 셈이다. 그런데 훌륭한 전문성이란 뭘까. 무엇을 보고 우리는 진정한 바리스타라고 말하는 걸까. 나는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결국은 너무 복잡하고, 기준이 제각각이라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이에 대해 나름대로 약간의 감각은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것이 바리스타의 전문성이 아닐까. 하고 경험으로 느끼는 약간의 온기 같은 게 있다.

  나의 경우, 과거에는 훌륭한 전문성을 가진 바리스타라 하면, 자유자재로 커피를 추출하고, 맛있는 커피를 능숙하게 추출하는 바리스타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리스타는 커피를 잘 내려야 한다. 기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커피를 잘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커피를 잘 내리게 되면,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진 근사한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6년 정도 일을 하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훌륭한 전문성을 가진 바리스타에 대해 물어본다면, 으음, 설거지와 청소를 깔끔하고 재빠르게 할 수 있는 요령이나, 매장 운영에 대한 흐름, 서비스에 대한 요령, 아주 작은 디테일들, 팀원과의 협업과 관계 등등에 대해 말한다.

  말하자면 커피를 능숙하게 추출하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마땅히 가져야 할 전문성이다. 이를테면 나무를 타는 원숭이와 같다. 원숭이에게 나무를 타는 것은 기본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만약 원숭이가 나무를 타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원숭이가 아니라 강아지나 미어캣, 그즈음의 동물일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술은 훌륭한 전문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훌륭한 바리스타의 자질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카페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튼튼한 다리와 잃지 않는 미소와 서비스, 다부진 손, 팀원과의 협업 등. 이 능력은 일시적이게 해 낼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해내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정말 힘들다. 왜냐하면 이는 경험과 근무일수가 쌓일수록 가장 먼저 무뎌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서 말한 채용공고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데 이렇게 적다 보니, “아니 이게 정말 훌륭한 전문성에 속하는 자질이라고? 정말? 그건 나도 할 수 있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지. 지속적으로 미소를 잃지 않고 일하는 건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절대 잃지 않는 미소를 가진 인재를 채용하게 되었는데, 손 감각이 부족해서 커피를 정말 정말 못 만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으흠, 이것도 정말 골치 아픕니다. 어디까지나 커피를 잘 만드는 것은 기본적인 자질로서… 나무를 못 타는 원숭이는… 에헴.

이전 16화 핸드 드립 커피 배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