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지구 온난화와 일회용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빨대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추가로 적어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손님들이 차가운 음료를 많이 마신다. 그러자 빨대 소비량이 늘었다. 얼마 전에 한 박스를 구매했는데, 어느새 동나간다. 한 타임 러시가 끝나면 쓰레기통에는 빨대가 우수수 꽂혀 있다. 하얀 크림이 묻은 빨대, 빨간 주스에 담겨 있던 빨대, 사용하지 않은 듯 깨끗한 빨대. 갖가지 빨대들로 쓰레기통이 한가득이다.
그러다 나는 ‘대체 음료를 마시는데 빨대가 왜 필요한 거야.’ 하고 문득 생각에 잠겼다. 어디를 가도 음료를 판매하는 곳에는 항상 빨대가 있다. 정말 빨대가 꼭 필요한 걸까?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몇 가지 유추를 해보았다.
빨대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얼음 때문이 아닐까. 잔에 입을 대고 마시면, 얼음이 미끄러져 흘러와 인중과 윗입술 근방에 올라타게 된다. 그러면 인중 부근에 물기가 흥건히 묻는다. 기분이 찝찝하다. 마치 코가 흘러나온 기분 같기도.
흐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논리적이지 않다. 얼음이 가득 담긴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 마시지 않는다면, 얼음이 인중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은 카페에 오면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마시기 마련. 그러면 얼음은 녹아서 올라탈 만큼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렇지 않은가요?
물론 누군가가 “아니요. 나는 어떻게 마셔도 인중 위로 얼음이 묻는데요. 그렇게 일반화시키지 마세요.”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두 번째 이유는 루주다. 입을 대고 음료를 마시면 루주가 물에 닿고,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다.
음,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루주가 묻은 유리잔을 닦는 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아 세제를 듬뿍 묻혀 닦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정신없이 바빠서 얼핏 대충 씻어버리면 잔에 입술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열심히 음료를 만들어 손님께 나갔는데, 잔 입구에 루주 자국이 묻어 있다면 그때는 정말 난감하다.
어쨌든 세제를 적게 사용하고, 빨대를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루주를 바르지 맙시다. 같은 운동을 펼친다면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 있으니,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빨대가 코나 입에 들어가서 피를 뿜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해양 생물들을 생각하면, 지워진 루주를 다시 한번 바르는 수고를 들여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유리잔의 모양이다. 아이스잔 하면 좁고 기다란 잔이 떠오른다. 매끈하고 반듯하게 기다란 유리잔. 어디를 가도 아이스잔은 이런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스잔으로 왜 좁고 긴 잔이 선택되었는지 궁금하다.
좁고 긴 잔은 입을 대고 마시기에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해보면 알겠지만, 좁고 긴 잔으로 마시면 인중 위로 얼음이 잘 올라간다(첫 번째 문제의 원인이다). 마치 얼음이 잔의 밑둥이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인중위로 점프하듯이 올라탄다. 그리고 좁고 긴 잔의 모양새를 보면, 빨대가 들어가기에 딱 알맞게 보인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제 자리에 빨대가 들어간 듯하다.
그런데 빨대가 있어서 잔이 좁고 길어진 건지. 잔이 좁고 길어져서 빨대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빨대를 사용하는 이유 중에 잔의 모양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꼭 좁고 긴 유리잔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나는 넓고 짧은 유리잔을 훨씬 더 좋아한다.
나는 빨대를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환경이나 해양 생물을 걱정하는 건실한 마음 때문은 아니다. 이는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믿는다)인 이유가 있다.
빨대를 사용해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가 마치 입 속으로 발사되듯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게 되면 커피는 혀의 깊숙한 부분(목구멍 근처)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혀가 꿀렁꿀렁거리면서 커피를 날름 삼켜버린다.
그러니까 빨대를 이용해 커피를 마시면, 나는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커피를 삼켜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뭔가 허전하다. 커피를 마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내가 뭘 마셨는지, 뭐를 마시기나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커피가 금세 없어진다. “두세 번 쪽- 하니깐 커피가 없네” 같은 말이 나온다. 만약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이 좋아서, 날름 삼켜버릴 거라면 시원한 물 한잔 마시는 게 가격의 측면에서 더 이득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갈증이 나서 목이 바짝 마르지 않는다면, 커피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고 싶다. 빨대로 날름 삼켜버리는 것보다는, 잔에 입을 대고 마시는 게 훨씬 더 맛있다.
빨대를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 사용하게 된 건지. 하루에 수십 개씩 나가는 것 같다. 지구 환경을 위해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매장도 있지만, 구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러니 그냥 빨대를 사용 안 하면 안 될까.
참. 그러고 보니 테이크 아웃하는 경우에는 꼭 빨대가 필요하겠군요. 하지만 테이크 아웃 컵도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마실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얘기하면 누군가가 “그런 건 이미 있어요. 가격이 비싸서 못쓰는 거지.”라고 말할 것 같군요.
아무튼. 지구 상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정도는 없어져도 됩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