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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Oct 09. 2019

커피와 신맛

  신맛이 있는 커피 좋아하시는지. 나는 개인적으로 신맛이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신맛만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주위에는 신맛이 있는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손님들도 “신맛 없는 커피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대체 커피와 신맛은 언제부터 묶이기 시작했을까. “신맛이 있는 커피는 싫어.” 라든가, “이 커피는 신맛이 있는 커피입니다.”라는 설명들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일지. 그리고 사람들은 어쩌다 신맛이 있는 커피가 싫어진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희 아메리카노에는 원두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맛이 있는 커피, 하나는 고소한 커피입니다.” 그러면 손님은 십중팔구 “고소한 커피요.”라고 조건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때로는 “저희 아메리카노에는 원두가 두 가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에 이미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해버리고, “고소한 커피요.”라고 손님이 대답해버렸다. “아, 정말 어디를 가든 커피가 신맛과 고소한 맛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 신맛이 있는 커피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 커피는 고소한 맛이 제격인데 말이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상상을 주문받으면서 합니다).

  또 한 번은 신맛이 있는 커피만 판매했던 경험이 있다. 두 가지 종류의 원두가 있지만, 모두 신맛이 있는 셈이다.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저희 아메리카노는 두 가지 종류의 원두가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하면, 역시나 십중팔구 조건반사적으로 “고소한 커피 주세요.”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희 커피는 두 가지 모두 신맛이 있는 편이에요.”라고 대답한다. 뭔가 예정된 항로를 틀어버린 함선이 되어, 새로운 바다로 모험하는 기분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두 가지 모두 신맛이 있습니다. 허허. (라고 주문받으며 상상합니다.)

  이런 경우 손님의 결정은 보통 두 가지였는데, 커피가 아닌 음료를 선택하는 사람과 그냥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다. 후자의 경우. 그러니까 신맛이 있음에도 커피를 주문해서 마신 사람은 신경이 쓰인다. 커피를 잘 마셔줬으면 하는 바람에 유심히 살펴보고 확인하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반응이 어떨지, 커피는 얼마나 빨리 마실지. 얼음 바닥까지 쭉쭉 마실지 같은 점들을 살펴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들임에도 대체로 커피를 잘 마셨다. 이때 내가 느낀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내가 그런 것처럼 손님들도 신맛이 있는 커피가 싫은 것보다는 신맛만 있는 커피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만약 “몇몇의 사람만이 신맛 있는 커피가 싫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럴 수 있다.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신맛이 있는 커피는 싫어.”라고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지. 취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것인데, 커피에 신맛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스페셜티커피 문화가 한국에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스페셜티커피가 이제 막 생겨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비교적 발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커피의 맛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다. 내 기억에 당시의 커피는 너무 시큼하고, 식초를 마시는 것 같고, 신맛만 있고, 강렬하고, 날카롭고, 진했다. 어쩌면 이때의 기억이 손님들에게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아서 “더 이상 신맛이 있는 커피는 마시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가 하나같이 신맛은 싫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다.

  지금은 스페셜티커피 산업이 많이 발전되었다. 맛에서 완성도도 높다. 신맛과 단맛이 균형을 이루고, 부드럽고 깔끔하다. 허브나 홍차 같이 은은하게 맛이 나는 커피도 있다. 물론 종종 과한 신맛 때문에 마시기 힘든 커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카페를 다니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된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커피가 많아서 너무 좋다. 그러니 만약 나의 추측이 맞다면, 다들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한번 스페셜티커피를 경험해보는 건 어떨지. 과거의 오류를 다시 바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신맛은 싫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최악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음, 어쩔 수 없지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강렬한 신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아아, 이건 신맛이 너무 적어. 더 진하게 더!” 하는 사람들도 정말 종종 있더군요. 대단합니다. 역시나 결국 모든 건 취향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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