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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Nov 14. 2019

진동벨을 잃어버리면

  카페에서 진동벨은 아주 중요하다. 진동벨이 없으면 손님을 일일이 찾아야 하고, 바쁠 때는 커피를 제대로 제공할 수 없다. ‘누구누구님 커피 나왔습니다.’하고 소리쳐야 하는 데다,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동벨을 만든 사람은 카페 공로상 정도는 받아야 한다.

  일하다 보면 종종 진동벨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 개당 가격이 10만 원 정도 하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직원 모두가 바짝 긴장한다. 어떤 카페에서는 잃어버린 사람을 끝까지 찾아내 물어내게 한다. 아마도 직원들이 진동벨을 자꾸 잃어버리니, 사장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켜 달라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일당이 넘는 금액을 물어내야 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처하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진동벨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정말 바빠서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건데… 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아직까지 실제로 물어낸 경우를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진동벨이 사라지면 정말 큰일이다. 바쁘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누군가 한 명이 “어라, 왜 3번 진동벨이 없죠? 누구 안 가지고 계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정적과 긴장감이 감돈다. 다들 앞치마와 호주머니를 뒤적거리고, 근처를 둘러보며 찾아보지만. 사라진 진동벨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3번 진동벨이 손님에게 언제 나갔는지 결재내역을 확인한다. 누가 마지막으로 만졌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머릿속을 열어서 3번 진동벨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이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으음, 나였나? 내가 방금 주문받았었는데, 내가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어쩌지? 제발. 나만 아니길… 나만 아니길, 나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생기면 나는 아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명백하게 범인이 드러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설령 실제로 잃어버린 사람이었더라도, 자신만의 알리바이는 있다. “나는 현장에 없었어요. 억울해요.”라고 말한다. 어디까지나 본능적인 부분이다. 생존에 대한 본능이고 자기 방어이다.

  사건이 생기면 성향이 드러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타입과 남을 몰아붙이는 타입이 있다. 자신만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나는 아니겠지. 나였나?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나일질도 몰라.”하는 사람과, “누구야. 나와. 3번 진동벨 누가 잃어버렸어.”하는 사람이다. 나의 경우는 소심한 편이라 전자에 가깝지만. 그런 걸 떠나서 정신건강에는 전자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가 잃어버렸어! 하고 화를 잔뜩 냈는데, 내 주머니에서 진동벨이 나오면 정말 난처해진다. 이런 타입과는 아무도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남 탓보다는 내 탓이 낫다.


  보통 진동벨이 사라지는 경우는 정해져 있다. 손님에게 받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앞치마에 들어가 있는 경우.

앞치마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경우는 언젠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손님에게 받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3번 진동벨을 어떤 손님이 가지고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만약 손님이 카페를 나갔다면, 방법이 없다. 손님이 집에 가서 가방을 정리하다가 “어라, 이게 왜 여기 있지. 다시 가져다 드려야겠군.”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랄 뿐.

  예전에 한 손님께서 가방 속에 진동벨이 있었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연락이 온 적 있었다. 손님은 집에서 카페가 멀기 때문에 당장 방문하지 못하고, 택배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택배를 받았을 때는 진동벨과 함께 죄송하다는 손편지와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분이 계시다니. 너무 감동했다. 잃어버린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되찾은 적은 처음이었다. 진동벨을 잘 받지 못한 우리의 문제였는데, 오히려 손님께서 더 미안해하시며, 택배로 보내주신 것이다.

  손님을 마주하는 서비스 업은 친절한 서비스로 손님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반대로, 종종 친절한 미소로 직원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손님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이런 분에게는 더 많은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뭉게뭉게 생긴다.


  그나저나 오래전부터 했던 생각인데, 진동벨 어플을 만들면 어떨까요. 요즘에는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까. 진동벨 말고, 진동벨 어플을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가게 직원이 포스로 진동벨 번호를 누르면, 손님의 핸드폰에서 지잉. 지잉. 거리면서 알림이 가는 겁니다. 손님은 진동벨을 끄면서 광고를 보고, 가게 주인은 어플을 설치하면서 사용료를 내는 겁니다. 어플 회사의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 아닌지. 카페 입장에서는 비싼 진동벨을 사야 할 일도 없고, 잃어버릴 일도 없고, 진동벨 개수 제한도 없습니다. 괜찮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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