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사장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카페를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그대로 만들어 둔 흔한 카페는 좋아하지 않는다. 대형 프랜차이즈 같이 편한 소파와 비싼 가구들을 마구잡이로 채워 넣은 곳도 싫다. 나름 유명한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디자인된 세련된 카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의자와 커튼이나 작은 소품들까지 사장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카페를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사장님의 손길이 묻은 카페’가 대체 무엇인지 물어보신다면. 으흠, 콕 집어내어 설명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재즈바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빌려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저의 이야기에 맞춰 적었습니다.-
사장님의 손길이 묻은 카페는 어쩌면 사장님이 오랫동안 상상해온 가상의 공간이다. 이를테면 ‘내가 카페를 차리면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어. 이런 음악이 흐르고, 이런 손님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카페야.’라며 꿈꾸는 카페에 대해 상상을 한다. 긴 시간 동안 상상하고 꿈꾼다. 그러다 상상에 상상이 더해지고 이미지가 쌓이면서 카페의 윤곽이 점점 명확해진다. 어떤 테이블이 잘 어울리고 어떤 커튼이어야 하고, 햇살은 어느 정도 들어와야 적당할지. 전반적인 구상이 완성되어간다.
이건 마치 여기에는 꽃을 심고 저기에는 연못을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연못 옆에는 초록색 의자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하는 식이다. 사장님의 공중정원.
그나저나 글을 적다 보니 떠오르는 곳이 있다. 굉장히 좋아하는 공간이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마도 공중정원은 이런 곳이 아닐지.
카페는 2층에 있다. 끼익 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오후의 정적이 느껴진다. 나무 바닥과 나무 테이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다. 살짝 열어 둔 창문의 틈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와 하얀 커튼을 둥글게 부풀렸다, 테이블 위로 사뿐히 스쳐 지나간다. 바람을 따라 들어온 햇살은 따듯한 기운을 머금고 공기로 스며든다. 그러다 이내 카펫 위로 내려가 잔잔한 먼지를 피우며 그림자를 만든다.
발소리마저 조용하다. 스르륵 책 장 넘기는 소리. 서서히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스피커에서 나온 피아노 선율은 바닥을 따라 잔잔히 흐르고, 이따금 커피 가는 소리가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든다. 소곤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10개 남짓한 좌석 수. 20평을 넘지 않는 아늑한 공간. 작은 소품에도, 화분에도, 의자에도, 메뉴판에도, 사장님의 마음씨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내친김에 다른 한 곳을 더 소개하겠다. 이곳도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다.
여기도 20평을 넘지 않는 아늑한 공간이다. 좌석도 10개 남짓. 동굴 같이 좁고 기다란 공간. 햇살은 입구만 슬쩍 비추었다가 사라진다.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면, 어둡고 기다란 공간에 커피 향기가 가득 내려앉아 있다. 천장에서 노란 조명 빛이 몇 개만 툭 떨어져 은은한 온기를 더한다. 군데군데에 놓인 날짜 지난 신문들과 잡지. 그 위로 올려진 꽃병과 꽃다발이 고흐의 그림 같다. 낮은 목소리로 공기에 스며들 듯 울리는 재즈음악. 촘촘히 앉아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 플랫화이트와 샌드위치. 사부작 거리며 날렵히 움직이는 사장님. 시장 봉투 들고서 들어와 반갑게 인사하는 손님들. 사장님의 분위기가 카페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시장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려, 잠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카페다. 나는 정말 이런 곳이 좋다. 가능하다면 우리 동네에 가져가고 싶다.
두 곳 모두 실제로 있었던 카페다. 그러니까 지금은 없는 카페다. 가까이 있지 않아 자주 들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영업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에 너무나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좋은(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은 오래가지 않아 문을 닫게 되는 건지. 더 자주 가지 않은 나를 탓해본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들이 오래가지 않아서 사라지는 걸까. 아마도 이런 부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자본이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에 맞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만약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시스템은 히틀러의 군대처럼 모든 것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우리의 생각도, 나무의 모습도, 햇살도, 사장님의 공중정원도.
“유일한 기쁨은 책 한 권 들고 카페를 찾아가, 어디에 앉아서 어떤 커피를 마실지 고르는 게 최고의 기쁨이야. 그냥 한번 갔는데, 자꾸 가게 돼.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제는 거기만 가고 있어. 이 카페가 너무 좋아.”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런 카페를 알고 있다는 건, 소소한 일상에 더하기를 한 기분이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공중정원을 가꾸는 사장님 여러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