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밥 (강냉이밥)
약 20년 전 강원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강원도는 밥으로 옥수수랑 감자 먹어?"였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등의 통신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시대가 막 개막을 했던 때라 그런가?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다. 어쩌면 제주도 집엔 다 귤나무가 있어?라는 물음과 같다고나 할까? 심지어 이런 질문을 들었던 고향 친구들도 있었다. "너희 집에 전기 들어와? 인터넷 돼?"
정선이라고 하면 TV에서 사람 하나 없는 산속에 집 한 채 있는 그런 화면만 나와서 그런지 정선 사람들은 모두 그런 곳에 사는 줄 아는 그런 시대였다.
우리 삼 남매는 옥수수와 감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굳이 찾지 않는다. 어쩌면 늘 어릴 때 집에 있던 것들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여름이면 옥수수를 두 자루는 늘 샀다. 성인 남자가 가볍게 들 수 있는 그런 자루가 아니고 성인 남자 둘이서 끙끙대면 들어야 하는 그런 크기의 자루로 두 자루를 의미한다. 우리 가족은 고작 일곱이었는데,,
집 마당에 들어온 옥수수는 우리 삼 남매가 모여서 껍질을 벗겨냈다. 껍질을 막 벗겨낸 옥수수는 너무 이뻤고 옥수수수염과 껍질이 마당 한편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엄마와 할머니는 뒤안에서 큰 솥을 올렸고 연신 옥수수를 삶아냈다. 정선 옥수수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삶아도 맛있다. 이런 옥수수만 먹고 커서 그런지 옥수수에 있어서는 보통 미식가가 아니다. 엔간한 옥수수로는 내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다. 옥수수맛 평가계의 고든 램지랄까?
우리 아빠는 라떼를 좋아한다. "라떼는 말이야."의 그 라떼. 아빠는 어릴 적에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20리가 훨씬 넘는 산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 먼길을 가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으며, 특히 겨울에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채 안된 때였으니 너 나할 것 없이 누구나 힘들던 그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싸준 옥수수 쌀로 지은 점심 도시락 밥은 딱딱하게 굳어 숟가락이 안 들어갔다고 했다. 그 시절의 고생을 알턱이 없는 어린 나는 옥수수 쌀로 한 밥을 해 달라고 엄마를 졸랐고 결국 엄마는 날 위해 따로 밥을 지어주셨다. 처음 먹는 옥수수밥은 너무 고소하니 맛있었다. 간간히 씹히는 옥수수 쌀은 단맛이 났다. 아빠는 이렇게 쌀이 많고 옥수수 알갱이의 껍질을 다 제거하고 뽀얗고 아주 작게 쌀 크기로 만든 옥수수 쌀을 넣은 밥은 진정한 옥수수밥이 아니라고 했다. 아빠의 라떼가 펼쳐지거나 말거나 나는 맛있게 옥수수밥을 먹었고 종종 엄마한테 옥수수밥을 해달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강냉이밥이라고 부르는 옥수수밥.
얼마 전 엄마는 통옥수수 알갱이로 된 옥수수 쌀을 보내줬다. 이미 엄마가 다 불려놓은 통옥수수 쌀이라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조금씩 꺼내 녹여 밥을 짓는다. 아빠의 그 딱딱한 강냉이밥이 아닌 쌀을 듬뿍 넣고 스타우브 냄비에 갓 지어 달달 고소한 옥수수밥을 지어 엄마가 보내준 반찬과 함께 오늘의 한 끼도 무사히 치렀다.
아직 이번 여름의 햇옥수수는 나오질 않았다. 아마 7월 말에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한 상자 배송되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가 오면 제일 좋아할 우리 집 두 올케들과 두 조카들. 여전히 안 쳐다보는 삼 남매. 옥수수 귀신인 두 올케가 몇 번 못 듣는 말 "시집 잘 갔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절.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옥수수 쌀은 정선5일장에 가시면 쉽게 구하실 수 있어요. 물론 온라인에서도 구입 가능하세요. 냉동실에 보관해서 조금씩 꺼내 해동한 후 밥을 지으시면 됩니다. (불리지 않은 통옥수수 쌀은 물에 충분히 불려 물기를 뺀 다음 냉동시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