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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l 30. 2020

태몽은 고모가 꿔줄게.

프로 태몽러

꿈에서 커다란 돼지를 보는 꿈을 꾼다던지 아니면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다던지 하는 꿈을 꾸면, 나도 모르게 그날은 로또를 산다. 그리고는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선 토요일 밤에 로또 1등이 나온 판매점을 검색한다. '역시 내가 산 곳은 없군.' 매번 꽝이다. 남들은 하다못해 5천 원짜리도 잘 맞는다던데 나는 뭐 그냥 아무 숫자 하나 잘 맞지 않는다. 


이런 내가 너무나 생생하게 꾼 태몽들이 있다. 그래 봐야 딱 두 번. 이 정도면 많은 거 아닌가?


태몽 #1

출처 - Pixabay

어느 화창한 주말 거실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잤다. 꿈에서 누군가가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으니 구경을 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따라갔다. 실제로는 강아지를 많이 무서워하는 쫄보다. 아주 작은 하얗고 조그만 강아지들이 잔뜩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강아지를 구경하는데, 그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내 엉덩이를 꽉 물었다. 

순간 나는 잠에서 깼고, 얼마나 꿈이 생생한지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태몽인가 싶었고 딱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당장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싶었으나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친구가 했던 '노력하고 있는데 임신이 안된다' 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일어나 동네 카페에 커피나 한잔 마시러 나가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나 방금 태몽 꾼 것 같은데 너 줄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친구가 신경 쓰고 있을 것 같아서 목구멍으로 말을 삼키고 있는 찰나, 친구의 메시지가 한 줄 올라왔다. "나 아기 생겼어." 당장 통화버튼을 눌러 방금 전에 꾼 꿈을 신나게 말해줬다. 친구도 친구의 남편도 친인척 누구도 태몽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이 태몽 네 거 맞나 봐. 깨자마자 네 생각이 났어." 

그날의 커피는 달았다. 시간은 흘렀고 친구는 귀여운 딸을 낳았다. 그 딸이 무럭무럭 자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너무나 똑똑하고 야무지게 커있었다. 


태몽 #2

 출처 - Pixabay

최근 어느 날 새벽의 꿈이다. 또 꿈에서 누군가가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으니 구경을 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또 신이 나서 따라갔고, 가보니 지난번 태몽 #1과 같은 하얗고 작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와 강아지임에도 불구하고 내 무릎은 훌쩍 넘는 크기에 새카만 강아지가 있었다. 원래 개를 무서워하는 쫄보들은 그 개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무서운 법인데,, 그 까만 강아지가 나에게 오더니 얼마나 애교를 떨면서 살갑게 굴던지 꿈에서의 강아지 쫄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쓰다듬고 신나게 놀았다. 잠에서 깨고 보니 또 문득 태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2세를 계획하는 지인이 아무도 없었기에 설마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동생 1번과 올케 1번이 계획하지 않은 둘째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하하하 아무도 태몽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꿈에서 밤만 주우면 주변에 누군가가 아기가 생긴다는 완전 프로 태몽러인 우리 엄마조차도 조카 3번의 태몽은 꾸지 않았다. 내가 꾼 이 태몽 늬들건가 보다. 

그렇게 조카 3번의 태몽은 내가 꾸었고, 크고 까만 강아지는 아들이라더니 정말 조카 3번은 남자아이다. 

더운 여름을 지내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쯤 조카 3번을 만나겠지? 태몽은 고모가 꾸었으니, 너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고모랑 놀자. 고모가 요즘 네 속싸개를 준비하고 있단다. 네 이름도 고모가 잘 생각해놓을게.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고모 이름도 잘 짓는다. 진짜야~ 



태몽 #3을 기다리며, 태몽 필요하신 분~ 제가 대신 꿔드릴게요.
그러나 제 맘대로 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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