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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an 05. 2024

시나몬롤과 커피

#7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깊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생각보다 공기가 차갑지 않았다. 이것도 지구 온난화의 문제인 걸까? 잠시 주입식 교육의 패턴대로 생각해 본다. 가장 궁금했던 사진 속 골목길의 끝까지 사진에서는 희미해서 보이지 않던 그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사진을 확대해 보았을 땐, 분명히 카페일 것 같은 작은 간판이 보였었다. 그러나 너무 희미해서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고 사진 또한 오래 전의 엽서 사진이라 과거의 그 카페가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사진 속 골목 저 끝의 카페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것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 작은 카페가 지금도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가게의 커피 향이 분위기가 함께 내어 줄 디저트의 맛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를 맞이해 줄 누군가의 미소가 궁금했다. 따뜻한 입김을 내뿜으며,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 가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 아기자기 하니 예쁘다. 상상해 오던 스웨덴의 딱 그 느낌이다. 거리는 굉장히 깔끔하다. 예전에 스위스로 출장을 갔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오전이라 출근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다들 표정이 없다. 낮이 짧은 겨울이 되면, 스웨덴 사람들은 예민해진다더니 표정에서도 그들의 심리상태가 나타났다. 한참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걸었다. 뿌옇게 보이던 그 가게 간판만 생각했다. 눈에 익은 작은 간판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간판에 글씨가 보인다. 스웨덴어와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귀여운 빵 그림과 가게의 이름이 쓰여 있다. ”Bandal” 응? 반달? 이건 한국말 아닌가? 문 앞에 조그마하게 ”오픈”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도 없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앙증맞은 셰프 모자를 쓴 동양인의 아가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이 가득 담긴 트레이를 들고 주방에서 나온다.

Hej. [헤이.]

Hej. [헤이.]

간단히 인사말만 스웨덴어로 건네본다. 매일 아침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말을 해 본 적은 없어서 인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영어로 얘기를 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방금 구운 빵 이름이 뭐죠? 

"이건 시나몬 롤이에요. 달콤하면서도 시나몬향이 나서 겨울에 더욱 딱인 빵이에요."

"그럼 시나몬롤 하나와 커피로 주문할게요.”

”네. 커피는 조금 기다려 주세요. 82 크로나입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그럼요. 커피 준비되면 가져다 드릴게요.”

눈이 매력적인 그녀가 웃는다. 나도 방긋 웃어주고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민트색이 감도는 벽지에, 자세히 보니 세로 줄무늬와 자잘한 꽃무늬가 프린트되어 있다. 각각의 모양을 가진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가게의 크기가 작다. 

테이블과 의자는 진한 나무색의 약간은 오래되어 보이는 가구이다. 의자의 등판과 바닥에는 분홍색의 작은 꽃무늬가 프린트된 천으로 싸여 있다. 의자가 살짝 푹신하다. 책을 펼쳐 들었다. 어제까지도 잠자리에 들기 전과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읽던 책이다. 명함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분명 어제까지 북적대고 사람 냄새나던 지하철에 끼여서 읽었는데, 오늘은 조용한 곳에서 따뜻한 빵 냄새와 책을 읽으니 어색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묘하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시나몬롤과 커피 나왔습니다.”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웃으며 커다란 설탕 덩어리가 콕콕 뿌려진 커다란 시나몬롤과 향긋한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Tack! [탁!]”

간단한 문장은 스웨덴말로 대답을 해 보았다.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모금 마셨다. 어제저녁인지 아니면 꿈이었는지 모를 그 식당에서 마신 커피와 같은 향에 같은 맛이다. 맛있다. 시나몬롤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커다란 설탕 알갱이가 사각거리면서 시나몬향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문득 파란 눈의 그녀가 생각이 났다. 카운터를 바라보니, 검은 눈동자의 제빵사가 나를 보고는 방긋 웃는다. 나도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눈동자의 색과 생김새는 많이 달랐지만, 파란 눈의 그녀와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책을 펼치고 표시된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한참을 읽다 보니 읽은 부분이다. 아마 책을 읽는 도중에 잠이 들었나 보다. 그래도 그냥 읽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나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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