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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an 05. 2024

미트볼과 링곤베리잼

#11

”뭐 좋아해요? 아니면 특별히 싫어하는 거나 알러지는요?” 가게 문을 잠그면서 그녀가 물었다.

”딱히 좋아하는 건 없어요. 생선으로 만든 스튜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생선은 굽거나 튀기는 거 아니면 회로 주로 먹게 되더라고요. 알러지는 없어요.”

”그럼,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이 있는데 간단히 맥주랑 미트볼 먹을래요?”

”좋아요!”

우리 둘은 잔뜩 웅크린 채로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었다. 아무 말없이 그저 걸었다. 가끔 우리 둘의 따뜻한 입김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렸다. 골목골목으로 돌아 수미가 자주 간다는 식당으로 갔다. 수미는 익숙하게 식당 주인과 인사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날씨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나를 이곳으로 휴가를 보내러 온 친구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나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살짝 구석진 곳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수미는 미트볼, 감자, 그리고 맥주를 두 잔 주문 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으로 온 후로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간단히 먹을 요깃거리를 사서 호텔방에서 먹고는 일찍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찬공기에 언 몸을 녹이고는 이유 없이 둘이 크게 웃었다. 나는 그냥 이 상황이 조금은 웃겼다. 그녀는 왜 웃었을까?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얘기를 했다. 수미가 한국에서 온 입양아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지,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의 친 자식인 그녀의 언니, 오빠와 전혀 차별을 두지 않고 키우셨고, 그녀의 언니와 오빠 또한 그녀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녀는 원래 화학을 전공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파티시에가 되었다고 했다. 요즘 그녀의 꿈은 한국에 가서 떡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존재하게 해 준 나라의 빵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버린 나라가 밉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였다. 한국은 그녀에게 대신 스웨덴 가족을 그녀에게 선물해 줬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미였다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의 타고난 성격에 스웨덴의 가족들이 이렇게 밝은 생각을 하는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다. 수미의 한국어 실력은 굉장히 유창했다. 가끔 사자성어이거나 한자가 많이 들어가는 단어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메모지와 볼펜을 얻어 적어가며 가르쳐 주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미트볼은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에 하나라고 했다. 맛있었다. 미트볼과 딸기잼이 함께 나왔다. 미트볼과 잼이라고? 조금은 놀란 눈빛을 들켰는지 수미가 이내 미트볼과 함께 나온 것은 링곤베리 잼이라고 알려줬다. 어색할 것 같았던 달달함과 고기의 육즙은 생각한과는 달리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나는 스웨덴에 대해서 그녀는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고, 서로 물어보고 대답했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스웨덴이 그리고 한국이 두 나라를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가 알고 있는 두 나라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서로가 살아온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마음 편히 얘기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굉장히 낯설다. 출장이 아닌 여행의 경험도 적을뿐더러 조금은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길을 물어보는 것도 굉장히 주저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더 주문했고, 밤이 늦도록 얘기했다. 그녀는 내일 아침도 일찍 일어나 ”반달”의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조금은 아쉽지만, 그만 일어나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반달”에 들러줘서 고맙다며 음식값을 지불했다. 나는 언젠가 그녀가 한국에 온다면, 내가 자주 가는 삼청동의 한정식 식당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오늘 맛있는 저녁을 사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밤이 늦어서 나는 그녀의 아파트 앞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했다. 그녀는 웃었고 우리는 또 아무 말 없이 입김만 보이며 걸었다.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우리는 짧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나는 내일 아침에 ”반달”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파트의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하고 뒤돌아 섰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갔다. 오늘 해 질 녘에 보았던, 반짝이던 주홍색 바다와 그녀가 환하게 웃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한창 졸리던 시간인데 잠이 오지 않는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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