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듯 마음이 팍팍한 날에 동물원이 떠올라 다녀왔다.
왜 동물은 보기만 해도 좋을까?
누군가가 말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고. 나 역시 십분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것 말고도 동물멍에는 불멍이나 물멍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무엇이 더 있다.
아마도 자유.
그 어떤 사회적 책임이나 구속 없이 그저 먹고사는 것에만 충실할 수 있는 삶이 그들에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영원히 가지지 못할 그 자유가 부러워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한다.
실상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좋을지 나쁠지 또한 영원히 알 수 없는 그 자유 대신
보기라는 안전한 좋음을 택한다.
난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아. 그 마음이었다. 좋은 것을 보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걸음의 도착지에서 내가 만난 건
내 시선의 자유를 위해 빼앗아버린 그들의 자유였다.
그곳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없었고 좋지도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동물원이 처음이 아닌데 왜 지금은 이런 게 보이기 시작했을까?
내가 드디어 어른이 되기 시작한 것일까.
불편해진 마음에 동물을 보러 와서는 동물을 피해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빈 우리를 마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 이게 어린 왕자가 받은 구멍 난 상자 그림이구나!
어린 왕자가 그 상자 그림을 받고서야 자신이 갖고 싶었던 진정한 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필요한 건 바로 이 우리였나 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이 우리 안에서 편안히 잠을 자든 밥을 먹든 하고 있을 동물이었나 보다.
난 다시 어린이가 되기 시작한 것일까.
시작은 인간의 불순한 의도였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곳에는 동물들이 산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되어 있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가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도 함께 살고 있음을 현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왕 있게 된 곳에서 되도록이면 그들이 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내가 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다양한 존재들의 잘 살아 있음이었으니까.
코끼리 열차가 여전히 재밌어서 다행이었다.
내 안에 어른이도 어린이도 함께 잘 있는 듯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