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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Mar 17. 2023

232. 나의 웃음 버튼











































오래전에 학교에 특강을 온 촬영감독님으로부터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달리는 장면을 찍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뛰기만 하면 다들 그렇게 웃어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도 달리는 것이 즐겁다. 이유 없이 웃으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는 어른이 된 까닭에

웃음소리를 밖으로 터트리지는 않지만 뛸 때면 내 세포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인간의 몸이 누워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무거운 머리를 받치며 하인처럼 지내다가 

발바닥이 지면을 박차고 통통 튀어 오르는 순간 밑에서 잡아당기는 중력으로부터도 위에서 내리누르던 머리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해방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혹은 우리 몸의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니 달리면 당연히 출렁출렁거릴 테고 

그때 생기는 진동수가 마치 고막을 두들기는 음악의 주파수와 같아서 귀로는 들을 순 없어도 몸 안에서는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선율이 되어 신이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 와중에 바람까지 불었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겐 엎친 데 덮친 격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진 웃음이 안면근육을 활짝 열고 소리가 되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기껏 도망쳐 나왔지만 맞바람에 부딪혀 멀리도 못 가고 다시 돌아와 고작 내 얼굴이나 때려대는 웃음소리가 웃겨서 다시 또 웃는다. 웃으니 웃기고 웃긴 게 또 웃기고 이게 뭐라고 웃기고.


모든 것에 항상 이유를 찾고 싶어 하는 머리도 이해한다.

나쁜 것은 피하고 좋은 것은 다시 일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다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머리는 이해할 것이다.


너무 궁금해서 질문을 던져봤지만 기껏 찾아낸 답들은 바람처럼 웃음처럼 다 날아가버렸다.

그냥 오늘 하루 시원하게 웃었으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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