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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Jul 24. 2023

제발..

요즘 주변에서는 가끔 이런 질문들을 한다.

"마음이 그렇게 힘들면 축구장에 안 가면 되잖아?"


맞다. 지금의 지옥을 내 눈으로 안 보고, 내 귀로 안 들으면 되는 일인데..

그런데 이건 뭐랄까.. 약간 숨 쉬고, 밥 먹는 그런 느낌이다. 그냥 꼭 해야만 하는 일인 것처럼..

우리 팀이 축구를 하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고, 축구장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의지로 되는 일이 이제는 아닌 것이다..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축구장에서의 악몽이 지속된 지 거의 한 달째,

더욱이 직전 주중 경기에서는 8년 만에 만난 대전을 상대로 패배를 기록하면서 10 경기도 채 치르기 전에 벌써 시즌 5패를 기록했다. (참고로 가장 최근인 2021년과 2022년엔 시즌을 통틀어 38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6패와 7패를 기록했었다. 이것도 성적이 안 좋다고 다들 불만이었는데.. 물론 경기력이 더 문제였지만,)


패배와 보이콧으로 물든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오늘의 상대는 '강원'이다.

시즌 초 강원은 8라운드까지 승리가 없었으며, 직전 라운드에서 비록 첫승을 거두긴 했으나 너무나도 확실한 오심 탓에 그 빛이 약간 바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누구의 순위나 경기력을 따질 때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질 수는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애가 타는 우리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90분 동안 계속된 공방에도 승부는 그대로였고, 응원석의 분위기는 침묵 속에서도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었다.


전반 초반, 부상을 당한 채 실려나가던 송민규 선수, 경기장을 벗어나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경기 종료 후 제대로 서지도 못하던 모습엔 더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90분의 정규시간 다 지나고 주어진 추가시간은 4분,

그 추가시간 4분도 다 지나가며 추가시간에 추가시간이 주어지던 그 순간,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 한 볼을 강원의 양현준 선수에게 뺏기게 됐고, 양현준 선수는 그 찬스를 살려 팀의 결승골을 만들어내게 된다.

강원의 벤치는 환호로 가득 찼고,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을 채운 것도 강원팬들의 목소리였다..


결과적으로 경기에 패했다는 사실이 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패배에 익숙해졌다기보다는 이겨도 함께 환호해 줄 수 없는 마음이 더 괴롭기 때문에..)

다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문제였는데..

강원의 양현준 선수가 볼을 탈취하는 과정을 두고 전북의 선수들은 파울을 주장하며 심판에게 거친 항의를 했고, 서러운 마음들이 터져버린 탓인지 다소 과격한 언행을 보이며 우리의 주장인 홍정호 선수는 경고 누적 퇴장을 그리고 김문환 선수는 다이렉트로 레드카드를 받게 됐다.


물론 경기 내 쌓였던 불만이 터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경기를 치르는 동안 강원의 계속되는 거친 파울에 선수들은 이미 여러 번의 어필을 했었고, 부상으로 실려나간 송민규 선수도 있었지만, 김문환 선수도 경기 중 당한 파울에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실점에 패배라니.. 팬들보다 선수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의 상황을 견뎌야 하는 선수들의 마음도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우리의 상황일 것이다..

침묵으로 응원석을 지키며 선수들을 바라만 봐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이렇게 힘든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의 마음은 정말 오죽할까.. 결국엔 팬도, 선수도, 모두가 피해자가 돼버린 지금이다.

그 서러운 마음이 누구보다 컸을 우리의 주장이 모든 선수들을 뒤로 밀쳐내며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과, 물론 거친 욕설이 잘못된 행동은 분명하지만 김문환 선수마저 퇴장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땐 '진짜 오죽하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던 경기 종료 순간,

패배한 선수들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응원석으로 인사를 오는데.. 많은 선수들이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 선수들을 독려하며 팬들 앞에 함께 서기 위해 부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김진수 선수가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내려온 모습과 제대로 걷지도 못해 코치진의 부축에 의지하던 송민규 선수가 다가오던 선수들에게 팬들을 향해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할 땐 참고 있던 눈물이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대체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과연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를 정말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는 할까...'

하는 괴로운 마음까지 뒤섞여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북팬들이 부르는 응원가 중에 '나아가자 전북'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아가자 전북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자 너흰 절대 혼자 걷지 않는다]

모두가 고통을 감내하던 그날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응원석에서는 한 달 만에 이 노래가 불려졌다.

고개 숙인 선수들의 아픈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침묵을 할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비록 공식적인 응원은 아니지만 이 하나의 노래로 팬들은 여전히 선수들 뒤에 우리가 있고, 모두를 지키기 위해 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노라 목놓아 부르며 외치는 중이었다.


계속 흐르는 눈물 탓에 목이 메어 응원가를 제대로 부를 수 조차 없었으며, 이미 응원석 곳곳에서도 많은 팬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뒤돌아가던 선수들 중에는 한 달 만에 들리는 응원가에 팬들을 다시 돌아보며 애써 참았던 눈물을 훔치는 선수도 있었다.

정말이지 이 모든 상황의 한가운데 서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마음을 잡을 방법이란 없었다..



그런데,

축구가 정말 이렇게까지 슬퍼도 되는 일인 건가..?

부디 오늘의 시간들이 서로에게 상처로 남지는 않아야 할 텐데..







<모두에게 지옥 같았던 4월이 지나고 다시 시작된 5월,

5월의 첫 경기를 앞두고 김상식 감독은 결국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서로가 눈물을 흘렸던 그날의 경기는 결국,

김상식 감독이 전북에서 감독으로 보내는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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