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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Nov 26. 2017

의문을 갖는다는 것

호모 콰렌스 | 프롤로그 저자 원문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Friedrich Nietzsche

     

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귀차니스트일 겁니다. 수면 시간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길고(오전에 약속을 잘 안 잡는 이유이지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도 하기 싫어서 다른 것들에 계속 눈길을 주고, 가만히 앉아서 머리 쓰는 것 외에는 정말로 옴짝달싹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지요.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 닥치면 그제야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일에 집중하지만, 평상시에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널널함을 선호하고 지향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저와 비슷한가요, 아니면 저와는 완전히 반대인가요?


벌써 햇수로 9년이 지나가고 있네요. 2008년, 저의 이런 성향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 우연히 한 분을 알게 됐지요. 지금이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랜디 포시(Randy Pausch) 前 카네기멜론대 교수.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같은 해 7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적잖이 머쓱하고 쑥스럽습니다만,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분이 저에게 삶을 반전시킬 기회를 줬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이분이 한 강연의 내용을 소개하겠다는 건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이분이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전한 메시지, 그 안에 담겨 있는 화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이분의 강연과 책을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정리한 화두 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갑자기 긴장되고 힘이 빠지면서, 숨이 가빠지려 하지 않나요? 내일도, 내일 모레도 아닌, 바로 오늘 자정까지만 살 수 있다는 얘기인데, 숨이 가빠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요. 어차피 몇 시간만 지나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테니, 이유나 원인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시간이 극도로 제한돼 있다 보니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앞이 깜깜해지겠지요. 뭔가를 하고 싶다 해도, 또 뭔가를 할 수 있다 해도 그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을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오늘 하루가 아닌 1주일, 한 달, 나아가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앞의 질문에 답하는 게 좀 더 쉬워지나요? 즉,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과 ‘1년 뒤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사이에 차이가 있느냐는 거지요. 한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간만 넉넉하게 주어진다면 더 많은 일들을, 더 알차고 즐겁게, 후회 없이 해낼 수 있다고, 해내고 말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반면, 겨우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확 줄어들겠지요. 일단 ‘멘붕’이 올 테니까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개의 문구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제외하면 우리가 방금 전에 가졌던 극과 극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겁니다. 절망감이 사라지니 절박함과 절실함도 덩달아 사라지는 셈이지요.


절망은,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절망감은 우리의 본질을 건드리는 삶의 핵심 요소입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크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고 있지요. 그것은 느슨하고 평탄하고 안정적인 생활 속에 팽팽한 긴장감을 심어주고, 우리에게 각자 자기만의 삶의 이유(reason to live)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거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한 모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저 같은 극도로 심한 귀차니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예전의 모습을 버리고 조금씩 바뀌어나갈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가정을 계속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과거와 미래가 다 후회로 다가오더군요. ‘예전엔 이것을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앞으로는 이것을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데…’라는 미래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더라 이겁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던 것과 하고 싶은데 영영 하지 못할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인생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나 싶어졌습니다.


현재는 과거가 차곡차곡 쌓여 생긴 결과물입니다. 미래 또한 현재가 조금씩 쌓여 앞으로 생기게 될 결과물이지요. 이 둘의 공통점을 추려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꽤 분명해집니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Carpe Diem.

     

영어로는 ‘Seize the day’,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 즉 ‘현재를 즐겨라’ 혹은 ‘현실에 충실하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가진 전부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하지 뭐.” “정말 지루하고 귀찮아 죽겠네. 언제쯤 끝나려나.” 혹, 본인이 이런 생각에 자주 빠진다면 스스로 미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나 이유가 없습니다(사실 그럴 자격이 없는 거지요). 자업자득이라고, 본인 스스로 자초한 거니까요.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도미노(domino)입니다. 인생이라는 하나의 에세이를 작성할 때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진 단락이, 나아가 여러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 최종 결과물인 에세이가 전부 다 ‘오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건, 역으로 그만큼 우리가 현재에 즐겁고 신나게 올인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지요. 저는 현재를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사람들 중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고, 미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거나 과장된 기대를 하고 싶지 않다면, 다음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한 순간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삶에 대해 최소한 이 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일과,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기 자신과 작별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때는 

그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내일부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생각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요?

여러분이 내일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나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릇, 인생은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어떤 질문이 담겨 있는지요?


2017년 11월 

Talent Lab 서재에서

허병민


『호모 콰렌스 : 질문하는 인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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