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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15. 2023

아빠도 거부한 중딩 아들의 선물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소풍의 계절입니다.

우리 집 중딩 아들의 소풍도 돌아왔는데요.


여기서 반가운 소식 하나.

중딩은 소풍 도시락을 안 싸갑니다. 사서 먹지요.

드디어 문어 소시지 눈알 박기에서 해방입니다.

냐하하하~





  아싸! 도 잠시.

'소풍 장소로 각자 집결'이랍니다.


학교는 코 닿을 거리.

학원도 단지 내 상가.

이사 온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고,

외출은 엄빠 라이딩 찬스가 대부분입니다.


소풍 장소는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중간에 갈아타기 또 한 번.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거리입니다.


걱정이 애벌레처럼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극성스럽게도 소풍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것은 분명 가족 나들이다 하면서요.





  그렇게 예행연습을 끝낸 아이는 소풍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전날 밤은 잠을 설쳐대며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했고요. 아침은 심하게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일어나서는 잠자는 어미를 내려다보는 바람에

꺄악! 아침부터 땡큐베리감사하게도 비명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소풍 전날 설레는 것은 초딩때 이미 졸업한 줄

알았더니만. 절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아침도 패스. 한껏 들떠서는 집을 나섰습니다.

등교할 대 보이던 밍기적군은 가출하고 없었지요.

어미는 아이돌 출근룩을 사수하는 기자처럼

집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을 찍어보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웬일로 중딩 아들이 얼굴 옆에 브이를

그려 주네요. 로또 맞은 날입니다. 어서 찍자. 찰칵!





  도착하면 톡하나 남기라 그렇게도 부탁했거늘.

아들은 통 연락이 없습니다. 학급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으로 아들의 생사를 확인합니다.


징... 징... 핸드폰 진동이 울려대네요.

어미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카드 사용 알림 문자가 이렇게 반갑기는 또 처음입니다.

너는 대답이 없지만 어미는 너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다. 음하하하~


태화원 11,000원

딱 봐도 중국 음식점 스멜이 풍깁니다.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군요. 짜장? 짬뽕? 뭘 먹었을까요.

돌아오면 꼭 물어봐야지 합니다.


꼬임공방 8,000원

초록창 검색 찬스를 씁니다. 커플 반지, 팔지 만드는

곳이네요. 잠시 스치는 생각. 호... 호시 여친이 생긴

거니? 아님... 서... 설마 엄마 선물? 어미는 김칫국을 한 사발 드링킹 해봅니다. 으흐흐흐~





  서넛 시간 뒤, 집 나갔던 아이가 무사귀환했습니다.

예상대로 손에는 선물을 달랑달랑 들고서요.


어미는 최대한 발랄하게 아이를 맞아 봅니다. 눈치는

있는지라 선물의 안부를 먼저 묻지는 않았지요. 자꾸 선물에 눈길을 줘서였을까요. 아들이 먼저 얘기를

꺼냈습니다.


자기가 따로 용돈을 챙겨 갔다는 둥,

친구들은 자기 것 사느라 바빴다는 둥,

엄마, 아빠 선물을 산 친구는 자기밖에 없었다는 둥.


아이의 말이 길어질수록 어미는 슬슬 불안해집니다.

자신 없는 본품에 사은품이 하나 둘 따라붙는 것

처럼말이에요.


아들의 작은 손짓에 어미의 두 은 버선발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건네주기도 전에 선물을 낚아채다시피

했지요.



짜잔!

큰 집게핀입니다.

요즘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그래서 어미도 하나

사볼까 했던 바로 그것이네요. 귀에 대고 소리쳐도

귀뚱으로 듣는 중딩인데, 놀랍게도 텔레파시가 통했나

봅니다. 캬~


뒤이어 자랑하듯 아빠 선물도 꺼내 보여 줍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진정 이것이 네 아빠 것이니?'


반백년 가까이 산 아빠 꺼라 하기엔

무척이나 똥꼬 발랄해 보이는 선물입니다.


중딩 아들은 아빠가 엄청 좋아하는 캐릭터라서

사 왔다며 침을 튀기며 떠들어댔습니다.

딱 한 개 남은 것을 자기가 차지했다면서요.


맞아요. 맞습니다.

아빠는 일본 애니 '원피스' 덕후이긴 합니다만...


아이는 한 술 더 떠 아빠가 차키를 여기다 매달고

다니면 딱이겠다고 합니다.

아이고! 아멘... 관세음보살...


아들아, 아빠 차키 어떻게 생겼는 지도 모르니.





  아이는 초딩때 아빠에게 문구점에서 제일 비싼

악성 재고 상품. 이만 이천 원짜리 계산기를 선물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아들아, 핸드폰에 계산기 기능 다 있다. 끙.


중딩 아들이 아빠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선물이

알록달록 원피스 키링이라니. 남편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해 퇴근을 독촉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두둥.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원피스 루피 키링은

조용히

중딩 아들 가방에 매달려있었습니다.


남편아, 나만 제대로 된 선물 받아 미안해.

우리 아들 점점 나아지겠지.

계산기보다 확실히 나아진 건 맞잖아. 크크크.


참!

소풍날 점심 메뉴는

예상을 뒤 업고 백짬뽕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후르릅 쩝쩝대며 여기서 긴 글 마무리 해봅니다.





오늘의 한 문장.

중딩 아들, 그래도 너의 안목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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