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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6. 2023

중딩 가방에서 속마음을 읽다

 중딩 아들이 목숨처럼 사수하는 것이 있는데요.

자기 방과 옷장 그리고 가방입니다.


사수하는 이유가 빤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매번 그 속 사정이 궁금한 어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년 심리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야기인즉슨 잔소리를 해댈꺼라면 차라리 치워주지 않는 편이

훠~ 얼씬 낫다는 말씀. 어미는 그 말에 고개를 백 번 끄덕였습니다. 단칼에 마음을 바꿨지요. 아들이 사수하는 3종 세트는 절대 건들지 않기로요. 

오픈 금지다! 를 새겨 넣었습니다.

머리에도. 가슴에 다가도. 콕콕!


 그러다 요즘 달라도 너무 달라진 중딩 아들을 보고만 있자 한숨이 나왔어요. 결국엔 마음을 고쳐먹었지요. 지켜보고 있을게 아니라 아들을 연구해 보기로요.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눌러두었던  마음이 다시 꿈지럭 대기 시작했으니까요.


급기야 어미는 아들이 사수하는 3종 세트  중 하나를 열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같았지요. 부드럽게 날아올라 가방을 홱- 낚아챘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습니다.

쩍벌남처럼 활-짝.




하마터면 가방 속에서 미라될뻔한 애들!


 처음에는 좀 놀랐어요. 더러워서 그랬냐고요? 아니요!  '어라... 예상보다 양호한데.' 그랬답니다.

눈도 무뎌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일렁이는 궁금증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분명 1일 1 생수인데. 빈 페트병이 왜 세 개나 들어 있는 거지? 심지어 뚜껑은 네 개고 말이야. .'


' 구긴 종이 뭉치도 버리지 않는구나. (여기서부터 슬슬 화가 올라왔습니다.) 너란 녀석! 고뇌의 흔적까지 소중히 여기는 냐?'


'저기... 저... 지사제는 몇 달 전 일인 것 같은데. 혹시 비상용? 이런... 철두철미한 녀석 같으니라고.'


혀가 자동 머신처럼 연신 쯧쯧 댔습니다. 어미는 감정을 추스르며 애써 괜찮은 점을 찾아 두리번거렸죠. 

안 그러면 뒷목 잡고 쓰러질 각이었으니까요.


'그... 그래. 그래도 과목별 파일 정리는 잘 되어 있네. 칭찬해.'


'복습하겠다 들고 온 교과서도 기특하고.'


'특히 욱여넣어 교복 점퍼. 챙겨 온 것만으로도

고... 고맙다.'




 이번에는 보조 가방인데요.

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보시기 전! 임산부와 깔끔쟁이들은 각별주의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으시다... 

심호흡 한 번 , 구경 가보실게요.





혹시 가방 아니고 쓰레기통 이세요?


사실 가방이 불룩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죠. 이 부끄러움은 어미만의 몫인가요?

왜! 왜왜왜!!! 중딩 아들은 휴지통을 돌같이 보는 걸까요? 쓰레기를 산처럼 모으는 걸까요?

제발 저희 집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 제발요.





쓰레기도 정리하니 예...예쁘구나.


책 보다 쓰레기가 더 많은 가방 실화입니까. 끙.

나름 깔끔쟁이 어미는 정신을 잃을 뻔했어요. 허나  평정심이란 걸 가져와 봅니다.


 쓰레기 더미를 분류해 가며 중딩 아들 마음을 읽어 내려갔죠.


'앗! 어미가 체중조절로 쵸코렛 못 먹게 했더니. 네가 사서 많이도 드셨구나. 밀카, 허쉬, 몰티져스까지. 편의점에 와 있는 줄 알았다. 다양하게도 먹었구나'


'빼빼로 데이는 혼자 자축했던 거니? 먹깨비인 건 알았지만 참 많이도 먹었구나. 어미는 네가 누드 빼빼로를 좋아하는 줄도 몰랐단다.'


'멘토스랑 마이쮸. 한참 질겅질겅 대더더니 만. 마이쮸는 맛별로 다다-  사 먹었구나. 마이쮸 캔털루프 멜론맛은 어미도 한 번 맛보고 싶었는데. 쩝.'


'큰 맘먹고 사준 라미 샤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어미 것까지 네가 쓰겠다며 두 개다 가져가지 않았니? 지금에서야 사각사각 연필 맛을 안거니?

딸랑 연필만 두 자루 구나.'


'초딩때 홀릭했던 포켓몬 카드는 아직도 놓아주지 못했구나. 에잇! 너란 녀석, 질척이 같으니라고.'


여기서 열폭 하이라이트가 하나 더 는데요. 

사진 속 지우개  한대 모아 놓은 거 보이시죠? 

사실 이건 지우개 똥이 아니에요. 바로 샤프심 한 통이 오바이트한 흔적입니다. 그 잔해들이 제 세상인양 가방 속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지요. 하나같이 죄다 똑똑 부러져서 말입니다.

 

으아악---

저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뒤흔들었습니다.

폭발 직전 달아오른 얼굴과 스팀 머리는 오롯이 제 몫이었고요.




 그런데 어미가 열어볼 것을 짐작했던 까요?

중딩 아들은 어미를 위해 가방 곳곳에 팁을 준비해 두었더라고요. 돈에 환장한 어미는 두 눈을 부릅뜨며 챙겼습니다. 동전 한 개라도 빠트릴세라.


어미는 4700원이나 되는 돈을 찾아냈지요. 돈의 위력이었을까요? 극대노 했던 마음은 어느새 호수처럼 잔잔졌습니다.

앗싸! 4700원




 중딩이 되어 말수가 적어진 아들입니다.

핸드폰과 친구들에게만 꺄르꺄르 웃음을 보여 주지요. 어미의 잔소리에는 팩 토라지기가 일쑤고요. 아들 터치는 개나 줘버리라는 소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비록 쓰레기 더미이긴 했지만

중딩 아들의 요즘을 들여다본 기분이었습니다.

멀어지기만 하다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었죠.


참, 말캉한 분위기도 잠시.

이지경을 목격한 마당에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요. 어미는 조용히 중딩 아들에게 전송했습니다. 적나라한 아들 가방 사진을요. 잔소리 대신! 




 오늘의  문장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중딩 아들 마음은 발견할 수 있다.











Photo by Pixabay & Pieora

가방 속 사진은 중딩 아들 허락하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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