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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19. 2023

세상 미운 가위질

      



“철컹철컹, 철컹.”

올해도 어김없이 경비 아저씨는 큼직한 가위를 들고 나타났다. 가위라고 해서 한 손으로 톡톡 자르는 원예용 가위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양손을 사용해 양팔을 벌렸다 오므렸다 해야 는 커다란 공업용 가위를 상상하면 딱 맞겠다. 아저씨는 삐죽빼죽 여기저기 웃자란 회양목을 툭툭  잘라 낸다.



     

회양목은 주로 인도와 화단 경계 나무로 심는다. 여긴 내 땅, 저긴 네 땅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야무지게 선을 그어준다. 그런 회양목에게 매정함 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하다. 왜냐 회양목은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선사주니까. 특히 겨울 잿빛 배경에 더해지는 초록 빛깔은 봄날을 기대하게까지 한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거인 나라.

거인 미용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저씨는 마치 거인나라 헤어컷 손님을 대하듯 회양목 머리칼을 잘라 다. 손놀림은 거침이 없다. 한참을 그러다 리듬 탄 가위질이 딱! 멈추는 순간이 다. 어느 정도 다 잘랐다 싶을 때. 아저씨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도  한 번 우뚱한다. 몸도 뒤로 살짝 젖혀 미술품 감상하듯 바라본다. 꼼꼼히 살펴본 후에는 다시금 가위를 잡아든다.


이번엔 신중을 기해 다듬기 단계에 돌입한다. 처음 과감했던 손길은 온대 간데없다. 세상의 온갖 세심함을 데려 몰입한다. 한번 엇 나간 가위질은 쥐 파먹은 머리가 될 테니. 완벽한 라인에 흡족함이 차오르면 그때서야 가위질을 멈춘다.   



 

아저씨 손길이 지나간 자리는 머리를 막 잘랐을 때의 어색함은 있지만 본래 의도한 단정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난 이 가위질에 속.상.함.이 그득.그득.하다.   




회양목은 겨우내 기다렸다.


코 끝 따스한 봄기운을


새끼손톱만 한 둥글고 단단한 잎이

내어줄 자기만의 공간을


바로 지금이야!

꽃 피울 신호만을


귀 기울여 제때 기지개를 활짝 켰건만


아뿔싸!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비의 팔랑 부채질

꿀벌의 까치발 간지럼도

아니구나


휘몰아치는 따귀세례뿐




아저씨는 의도치 않았으나

안타깝게도 방금 꽃피운 회양목을 싹둑싹둑 수북이 잘라낸 것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 속에서 풀 내음이 확 밀려온다. 얼마 살지 못한 회한의 아우성일까. 마지막 몸부림. 그 향이 유독 짙다.   


쨍한 노란 개나리, 찐 분홍 진달래, 감탄 보라 제비꽃, 로맨틱 연분홍 벚꽃까지. 봄이 오면 다른 꽃들은 경쟁하듯 각가지 색으로 뽐내기에 정신이 없다. '나 좀 봐줘요!' 소리치며, 무심히 지나치는 눈길 하나하나를 붙잡는다.  


반면 회양목 꽃은 찬찬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다. 다른 꽃들처럼 단번에 시선을 잡기 위한 꽃과 잎의 보색대비란 결코 없다. 꽃과 잎의 경계가 흐릿흐릿. 꽃은 잎에 물들고, 잎은 꽃에 스민 것만 다.  소인국에나 어울릴법한 작은 수술다발처럼 생긴 꽃모양도 생경하다. 그러니 회양목에 꽃이 피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리라.





회양목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다 온 마음을 앗기게 되었다.

이상한 조바심도 생겼다.


어느 틈에 잘려나갈지 모르니 오며 가며 틈틈이 챙겨 보자는 마음. 회양목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널브러져 쉬고 싶은 마음도 던져 버리고, 오늘도 회양목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춘다.  


! 팡팡! 팡!  팡! 팡!

회양목 꽃이 여기저기 한가득 폭죽을 터트린다.

봄날 불꽃놀이가 따로 없다. 그것도 한낮에 벌어지는 불꽃놀이라니. 가던 길 잠시 멈춰 잔잔한 눈길 한번 주었을 뿐인데 호사를 누린다.


봄날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에만

눈길 주지 마시길.


벚꽃, 유채꽃, 튤립, 철쭉에만

마음 기지 시길.


부디

올봄에는

한 발짝 다가가

회양목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시길.




아저씨의 경쾌한 가위질을 멈추게만 하고 싶은 봄날이다.


회양목. 팡 팡 팡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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