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다만 나의경우 같은 병원에서 신속항원 검사를 했는데도 음성이었다. 정말 내가 슈퍼면역자란 말인가? 동반자가 확진이라는 말을 들으니 목이 갑자기 까슬까슬해지는 기분인 것 같다. 정말이지 이런 것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게 아닌가 싶다.
병원과 선별진료소가 북새통이라고 한다. 네이버를 찾다 보니 그나마 독립문 근처가 수월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갔다. 근데 웬걸 독립문을 한 바퀴 돌아감은 줄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독립문이 조금만 더 컸어도 포기하고 갔으리라.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줄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 내 앞에 여사님은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새치기하고서는 점퍼에 달린 모자를 써서 귀를 닫고 연신 소독제가 든 분무기를 온몸에 뿌린다. 다가오지 말라는 것인가? 새치기하고서는! 굳이 침 튀길 일 만들고 싶지 않아 분한 마음을 삭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 아줌마 앞에 있는 건장한 아저씨(라고 해봐야 내 또래)가 “아줌마 거리 좀 둡시다. 아까부터 자꾸 부딪히잖아요!” 하고 면박을 줬다. 처음에는 쌤통이라는 마음도 들었는데, 위축된 모습을 보고 나니 아 저 아줌마는 정말 내 앞에 새치기한 걸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처음에 여기 줄을 선 거라고 말했다면 정중히 사과하고 뒤로 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한 미움을 만들어 감정 낭비를 한 것만 같다. PCR을 위해 코를 찌르는 것은 정말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고생하셨습니다” 하루에 몇천 명의 코를 찌르실 검사관이 전하는 위로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이봐요, 고생은 당신들이 하고 있잖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확진 1일차
어젯밤에 검사를 했는데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확진되었다는 문자가 와있다. 역시 5G의 시대인가? 발신 주체는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당신은 일단 양성이니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자택에서 격리한 상태로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3시간 뒤쯤 역학조사 대상임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URL을 통해 정보를 기재하는 방식인데, 이런 것을 당사자 자율에 맡기는 것을 보면 참 우리나라는 질서정연한 것 같다. 어제 선별진료소에서도 한 시간 가까이 서서 기다리며 허리가 아프고 불만이 터져 나올 법도 한데 다들 입 닫고 묵묵부답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시간 죽이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한 것 같긴 하다만. 기저질환자로 체크를 하고 나서 뭔가 조치가 있으려나 하고 기대하진 않았다. 우리나라 당뇨환자만 1000만 명이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 사람들에게 조치하겠는가.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골골대고 있을 무렵 서울시에서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오후 3시쯤 이었던 거 같다. 의료상담센터에서 전화상담과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고, 대면 진료 등에 대한 안내였다. 고맙지만 이런 건 좀 확진됨과 동시에 한 번에 보내주면 더 좋았겠다. 그리고 나 같은 겁쟁이들은 이미 약을 집에 쟁여 두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분명 증상이 가볍다고 했는데 왜 난 아프지? 그 뉴스 덕분에 회사에서는 당연히 일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우리 같은 월급쟁이를 착취하기 위한 거대자본과 언론의 큰 그림인가? 6시, 공무원들의 퇴근 시간이지만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이번엔 마포구 재택 치료팀이라고 한다. 안내문과 더불어 언제 격리가 해제되는지를 알려온다. 검체 채취로부터 7일 차 24시. 앞으로 6일 후면 나갈 수 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져서.
확진 2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미열과 함께 근육통, 제법 목이 칼칼하다. 열이 펄펄 오르던 딸은 다행히 컨디션이 돌아왔다. 폐렴으로만 가지 않으면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만 믿고 버티고 있었는데, 가장 큰 걱정을 덜었다. 이번에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던 중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딸이 다니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다. 가족 모두가 자가진단키트로 음성이 나왔지만 코로나 확진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증세가 있으면 안 받아준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고, 주위 사람들은 미리 약국에서 감기약이라도 쟁여두라는 조언을 했다. 딸이 너무 어린데다 어릴 적 심장이 아팠던 적이 있어서 병원 진료가 절실했다. 고열에 시달리는 딸을 받아주시려나 싶은 마음에 전화를 드리니 빨리 오라고 하셨다. 서둘러 달려가니 진료와 함께 약도 넉넉히 지어주시고는 마지막에 아프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뭐랄까. 사람들이 피하는 전염병 환자를 맨손으로 돌봐주는 울지마 톤즈의 신부님 미소가 떠오른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우리에겐 그랬다. 너무 막막할 때 소중한 딸을 지켜주신 한 줄기 빛 이였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우리 부부만 잘 나으면 되겠다. ※ 채수호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확진 3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심하게 아팠다. 나는 편도선이 쉽게 붓는 편인데, 이건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마포구 재택 치료팀에서 보낸 문자에 비대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던 내용이 기억나서 찾아보니 근처에 가능한 병원 리스트가 있다. 네이버 지도 앱에 ‘비대면 치료’라고 치니 우리 집 근처에 가능한 병원이 바로 보인다. 문자에 쓰여 있는 병원을 하나씩 검색하려던 내 손가락이 민망하다. 기술이 이미 내 상상력을 뛰어넘어 버린 것 같다. 아니면 내 상상력이 이미 구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구닥다리거나.
병원은 바로 집 앞 이비인후과였다. 전화를 거니 접수를 바로 해준다. 주민등록번호 확인 후 의사가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한다. 5분 내로 전화가 다시 왔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약을 받으러 올 수 있냐고 한다. 가족 모두 확진이라 갈 사람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무슨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낼 테니 거기서 집으로 보내줄 것인데 아마 저녁에나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그날은 약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저녁 8시쯤 약이 도착함) 하지만 사실 비대면 진료를 크게 기대했던 바도 아니었고, 약을 집까지 보내준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해서 언제 받는지는 생각지도 않고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결정적으로 무료였다. 진료 봐주신 간호사님 의사님 약사님 퀵서비스 기사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확진 4일차
집에 쓰레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아기 기저귀가 부피가 크다 보니 쓰레기 쌓이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음식물 쓰레기도 어느덧 한계점에 다다랐다. 우리는 배출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였구나. 그간 사회의 시스템에 의존했던 부분이라 미처 몰랐다. 역시 난 도시에 살아야 하겠다. 딸이 몹시 밖에 나가고 싶어 한다. 늘 창밖을 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가자고 한다. 세 살배기 아이에게 전염병과 자택 격리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저 다른 놀잇거리와 간식거리로 관심을 돌릴 뿐이다. 거실에 텐트를 펼쳐 캠핑을 하러 간 기분을 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숨바꼭질할 곳도 동이 나버렸다. 하필 집 밖으로 바로 놀이터가 보인다. 막 말이 트인 아이는 계속 놀이터를 외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해 딸아 미안해 우리 곧 나갈 수 있어.
확진 5일차
‘엇 왜 이리 아프지?’ 해서 검사받고, ‘아이고 죽겠다.’ 할 때 확진 문자 받고, ‘좀 살겠네……’할 때 약이 도착한다던데. 나의 경우는 6일 차 때가 컨디션이 제일 안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 찾아보니 격리기간이 끝나도 목에 통증이 계속되는 사람이 꽤 많다고도 하고, 심하게는 심장 통증도 후유증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거는 역시 찾으면 찾을수록 겁나게 된다. 며칠 전에는 하루에 60만 명이 확진되었다고 하는데, 천안시 정도 되는 도시가 통째로 하루 만에 확진되었다는 것과 같다. 무슨 좀비 영화 같은 이야기다.
확진되어서 집에서 자택 격리 중이라고 하도 떠벌리고 다녀서 이리저리 쏟아지는 온정 속에 기프티콘이 있다. 그중 치킨 같은 거대한 선물도 있었다. 우리 집은 배달 음식과는 친하지 않은 사이였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배달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은행수수료와 배달료가 세상에서 제일 아까워서 되도록 내가 직접 가서 포장해온다) 친구가 보내준 기프티콘으로 치킨을 시켰는데 국내 탑티어의 치킨 브랜드였다. 그래서일까, 배달이 매우 불편했다. (오만할 정도로 생산자 중심의 서비스였다) 과정이야 어쨌건 배달된 따끈한 치킨을 한입 하려는 순간. “아빠 뭐 먹어요?”(딸이 이제 막 입이 트였다) “이거 아빠 치킨이야.” “나도 치킨 먹을래!”(요즘 아빠 먹는 거 뺏어 먹는 데 취미 들렸다) “나은아, 치킨이 뭔지 알아?”(아직 아이에게 치킨을 준 적이 없어서 되도록 안 주려 했다) “닭고기!” 딸은 그렇게 인생 첫 번째 치킨을 맛보게 되었다.
확진 6일차
아내와 아이가 격리 해제되었다. 아이는 열이 떨어지고 난 뒤로는 병원 조제약을 먹지 않았고, 컨디션도 좋아졌다. 그래서 집안에만 있는 것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나 보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인적 드문 곳으로 바깥바람이라도 쐴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이미 몇 일 전 격리 해제되신 장모님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려는 듯 보이지만, 나를 쉬게 해주려는 마음인 것 같다. 밀린 이불 빨래와 정리 정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