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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석 Jul 24. 2020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5세기부터 11세기

육화 논쟁과 그리스도교 세속 권력화, 이슬람교 등장

5세기부터 6세기 사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예수 육화 논쟁이 화두로 올라가요. 예수는 신의 아들인데, 마리아라는 인간 어머니가 있으니 과연 예수는 신일까, 반신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하는 문제예요. 네토리우스는 예수 안에 위격이 둘이라고 말했어요. 인간의 위격과 신의 위격 둘 다 존제한 다고요. 즉 그는 반신인데, 예수에게 있어 신격 어머니는 없고 인격 어머니 마리아만이 있죠. 한데 우리는 인간을 숭배할 수 없으니, 흔히 가톨릭에서 하는 마리아 숭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마리아 신상도 만들고 잘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초 치는 소리예요.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죠. 그래서 네토리우스는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이라 판정돼요. 한데 훗날 예수에겐 인격, 신격이 아닌 인격만 있다는 단성론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나중에 이단으로 판명됩니다.     



6세기쯤 이후에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원 운동과 그레고리 대교황의 교황 권력 확충으로 교회가 유럽 안에 더욱더 영향력을 펼치게 돼요. 로마 쇄락 이후 모든 국가 행정 요소가 다 무너졌는데 교회는 비교적 그 틀이 남아 있었고 늘어가는 무정부 지역에서 민중들을 책임지던 유일한 집단으로서 권력을 유지했어요. 한데 이후에 롬바르디아 왕국이 로마 제국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나요. 교황은 그때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교왕은 피핀에게 왕의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했죠. 피핀은 성공적으로 롬바르디아 왕국을 막 아네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교왕에게 프랑크 왕국 내에 총독령을 교황에게 바칩니다. 바로 그 땅이 교황령이 되었죠. 그 이후 피핀 이후 사를 마뉴 대제가 롬바르디아를 물리치고 신성 로마 제국 건립을 선언합니다. 교황과 황제가 힘싸움하고, 온 유럽에 그리스도교 색체가 짙게 나타나는 중세 모습이 이 때 확립돼요.      



시간은 흘러 흘러 9세기. 요한네스 스코투스라는 신학자,철학자가 소개돼요. 스코투스는 한창 종교의 교세가 온 유럽을 뒤덮던 때,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모난 학자였어요. 종교가 참된 길로 나아가면 곳 참 철학에 다다르고, 또 철학도 참된 길로 나아가다 보면 곳 참 종교에 다다른다고 말했어요. 계시 없는 철학이 신앙과 동등하거나 우월하다고 말한 것이죠. 스코투스는 철학적으로 창조에 대해 설명했어요. 창초에 대해 만물을 4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1. 창조되지만 창조되지 않는 것, 2.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것, 3. 창조되지만 창조하지 못하는 것, 4.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것으로요. 1. 창조되지만 창조되지 않는 것은 신이고, 2.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것은 플라톤식 이상이며 3. 창조되지만 창조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 안의 사물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4.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만물 목적으로서의 신입니다. 위 분류에 속하지 않는 것은 비존재인데요. 비존재에는 기타 물질과 죄가 포함되어 있데요. 그래서 악은 비존재이며, 결핍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 개별적 사물은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세계에 포함되어있는 것이고, 아닌 것은 비존재와 결핍이니까요.     


다시 시간이 흘러 11세기, 교회의 권력이 커져가는 동시에 점점 부패해 성직매매 등 돈의 힘이 좌우하는 등 세속이 극화되었어요. 이때 독일에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을 거치지 않고 대주교를 임명하는 사건이 발생해요. 한데 일반 주교도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존재라 함부로 세속 권력이 어찌하면 안 되는데 대주교를 임명해버리니 교황청이 난리가 난 거예요.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기에 이르고,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있는 카노사로 가 무릎을 꿇고 굴욕적으로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이 것이 카노사의 굴욕인데요. 언뜻 교황의 승리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하인리히 4세가 용서를 구하면서 이렇게 말했었어요. ‘독일의 모든 일들, 적대자들을 처리하는 일들까지 모두 교황에게 맞기겠습니다.’ 라구요. 교황이 이 내용을 허락하고 보니 독일의 적대 자은 곳 교황의 적대자들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적대자들과 대립하고, 결국 독일의 정적들은 저 교황은 우리의 교황이 아니니, 우리만의 교황을 새우겠노라며 따로 자기들만의 대립 교황을 새웁니다. 결국 기존 교황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여기서부터 교황권이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죠.     



이 시대에 등장한 철학자는 안셀무스예요. 안셀무스는 신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을 했죠. 증명의 대전제는 절대적인 외부 사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물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며 사유할 때 그 사물에 대한 개념으로서 사유하게 돼요. 버트런드 러셀을 사유할 때, 우선 사람이라는 큰 개념을 통해 사유하게 되고, 안셀무스를 생각할 때 철학자라는 큰 대상 필요한 것처럼요. 사유에는 큰 대상이 필요한데요. 큰 대상의 더 큰 대상, 더 큰 대상의 더더 큰 대상으로 이어 올라가다 보면 가장 큰 대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에요. 그래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이에요. 여기서 러셀이 이런 질문을 던져요. 사물을 생각한다는 사실 만으로 그 사물이 우리 생각밖에 있다는 것이 증명 가능한가? 우리가 더 큰 대상을 통해 사유한다 하여도, 그 큰 대상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가능한지 묻고 있는 거죠. 러셀은 여기서 좀 더 말을 이어요. 그렇게 100% 순수한 외부 사물을 상정하면 그 순수 사물과 사유는 평행선이 놓인 것처럼 맏닿을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물과 사유를 잊는 다리 같은 개념이 또 하나 더 필요해진다고요. 그럼 신이든 교회이든 개별자이든 관념이든 표상이든 오성이든 인식에 것 다리가 걸쳐지게 돼요. 러셀은 순수 사물을 인정하지 않았죠. 러셀은 동시대 학자인 브래들리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말을 들면서 저들은 이해하기보단 먼저 믿는다고 바 판합니다. 순수 사물을 상정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네요.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위세가 하늘을 찍었다가 점점 추한 모습을 보일 무렵 이슬람교가 등장해요. 622년 무함마드에 의해 부흥한 이슬람교는 공격적인 정복 산업을 펼쳤고 아주 성공적이었죠. 이슬람교는 단순한 일신교였기 때문에 육화나 삼위일체 논란이 없었고요. 이슬람 신정국가인 이란은 무함마드의 후손이라 불리는 칼리프들이 대를 이어 전제군주 체제로 나라를 다스렸어요. 중세 시대에 유럽이 지지부진했던 때 중동 이슬람교도들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넵니다. 이는 학문적으로도 그랬는데요. 예를 들자면, 무하마드 이븐 무사 알 화리즈미라는 이슬람교도가 페르시아에서 인도식 숫자 계산법을 공부해 흔히들 우리가 아는 아라비아 숫자 체계를 퍼트렸던 것이나, 이븐 시나, 아비 세나. 아비 에로스 같은 철학자들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구하고 주석을 달면서 보편자 문제나 영혼 불멸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유지, 전승하며 발달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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