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기(12)_사회정서 계모임

'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by 최순돌

2025년 7월 24일



세상에는 인연이라는 게 분명해 있긴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그랬는데, 그런 인연임을 느끼게 하는 한 작가님이 계신다. 그런데 이 작가님께서 '시치유음악극'이라는 장르로 당신의 동시집을 극으로 집필하였고, 이것을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러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찾아갔다. 역시 작품은 내세운 장르답게 시가 있었고, 치유가 있었고, 음악이 있었고, 극이 있었는데, 그거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것은 옆 관객이 우는 소리였다.


극의 중반부터 옆에 앉은 청년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헝헝이라고 해야 할까. 그 청년의 옆에 앉으신 분이 조금씩 위로해 주실 때마다 잠시 잦아드는 듯싶다가도, 이내 헝헝 울곤 했다. 나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 한 울음을 표현하는 의성어를 그렇게 실제로 듣기는 처음이어서 극의 내용보다 옆에 청년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기 시작했다.

극은 물론 슬프긴 슬픈 내용이었는데, 극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내 옆에 청년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렇게 헝헝 우는지 못내 걱정도 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다행인 것은, 우리가 '시치유음악극'을 함께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저 청년은 저렇게라도 눈물을 흘리면서 정화가 되고 있진 않을까.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떠올리면서, 왼손에 항상 넣어 다니는 손수건을 주지는 못하고 꽉 쥐며 연극을 보았다. 아마 아주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였다면 손수건뿐만 아니라 어깨 한 번 꼭 두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헝헝 우는 청년 옆에서 나는 그거보다 상대적으로 씩씩하게 관람을 마쳤다. 그러다가 김윤경 선생님의 책 내용이 떠올랐다.


'공중보건학에서 출발한 MTSS는 1차(보편적) 예방 대상, 2차 예방 대상(관심군), 3차 예방 대상(위험군)으로 나누어, 학생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잘 설계된 MTSS는 적어도 세 층위별로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제공하고, 지원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데이터를 근거로 지원 사항을 수정한다.'


'시치유음악극'이 끝나고 반응은 가지 각색이었다. 내 옆에 헝헝 울던 청년은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많이 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막상 끝나니 제일 많이 웃으며 배우들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내 앞자리에는 친구 관계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세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다른 두 사람에게 웃으며 "너 울었어? 너 울었어?"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아냐, 안 울었어." 하며 웃는 표정으로 살며시 새어 나온 눈물을 닦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아직도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용히 반응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와 함께 갔던 선생님들도 저마다의 슬픔들이 있는 것 같았고, 우리는 평소 보다 더 적은 대화를 나누며 평소보다 더욱 일찍 헤어졌다.


나는 연극을 보고 오래도록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오늘 나의 슬픔이 어느 정도의 슬픔이어야 했는지를 잘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마치 오늘의 시간이 '슬픔 계모임'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유년 시절,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명씩 돈을 몰아 갖곤 하던 어머니의 계모임. 그러다가 가끔은 순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도 있었는데, 우리도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순서를 양보하는 어머니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예상보다 훨씬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우리보다 더 어렵대나 봐.'


오늘 연극 관람에 있어서의 마음을 MTSS에 따라 표현하자면 나는 1차 예방 대상이었고, 다른 관심군이나 위험군에게 슬픔과 눈물을 몰아주기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나도 곗돈을 타듯 슬픔과 눈물을 실컷 흘릴 순번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삶은 이렇게 조금 덜 한 사람이 조금 더 한 사람 옆에서 부축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명장면이 하나 있다. 치매에 걸린 김혜자 선생님이 갑자기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인 나문희 선생님에게 이렇게 퍼붓는 장면이다.


'너는, 왜 맨날 넌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땐 없어!'


저마다 슬픔을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황혼 청춘들의 이야기인 드라마. 마침 저 대사가 나오는 씬에서는 김혜자 선생님의 곗날이었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정서교육은, 언젠가 나도 마음껏 슬픔을 표현해도 괜찮을 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만드는 '마음 계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계모임에 가입 규약이나 회칙이 정확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이 글을 읽어주는 분이라면 함께 슬픔을 몰아주기 할 계모임에 가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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