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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Jun 27. 2024

내향인 워홀러가 이루고자 했던 독립

에필로그


독립
: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엄마는 평상시에 하도 내가 질문을 많이 하니까 그런 건 엄마한테 물어보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나도 알아서 하고 싶은데, 불안했고 두려웠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틀리면? 내가 가는 이 길이 실패하면 어쩌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늘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확인을 받고 싶어 했다.     


독립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의존적인 특성뿐 아니라 가난한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 하나 뾰족하게 답이 나지 않은 채 쳇바퀴 돌고 있는 지루한 내 삶을 바꿔보고 싶었다. 후회를 반복하는 패턴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고 도전하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는 것과 직업상담사로 계속 일하는 것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로서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성장하는 쪽은 워홀이 아닐까 판단해서 결정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 순간부터 나의 모든 것을 글감이고 모든 일은 부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더라도 일은 얼마든지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땐, ‘도대체 왜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곳에 왔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라고 질문하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이 혼란스럽고 맨 땅에 헤딩하듯 해외살이를 시작한 나의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소심하고 조용하며 내향적인 내 성격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나와 달리 누구랑도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소위 ‘인싸’ 기질의 사람을 보면 참 부러웠고 한편으론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다. 내향적인 성격은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틀려도 처음부터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틀릴까 봐 두려워서 우물쭈물 자신감 없게 겨우 말을 뱉는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5월의 날씨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불안과 두려움이 컸다. 과연 내가 내린 결정이 잘한 걸까? 하는 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버텼던 이유는 ‘독립’을 목표로 워킹홀리데이를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무엇 하나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힘들어도 계속 기도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적인 인간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부딪혔던 일들을 통해 생활력이 높아지고 금전적인 감각도 생겼다. 요리를 1도 몰랐던 내가 김치찌개부터 시작해서 삼계탕까지. 이제 레시피가 있으면 요리하는 건 두렵지 않다. 요리를 잘한다는 말도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들에게 종종 들었으니, 나름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영어를 틀릴까 봐 우물쭈물 자신 없어했던 1년 전 나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 KTX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는 일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외국인이 앉게 되었다. 옛날의 나였다면 입 꾹 다물고 휴대폰만 봤을 텐데 외국인에게 먼저 인사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 가는지 묻기도 할 만큼 많이 바뀌었다. 원어민 발음이 아니면 좀 어떤가. 나는 원어민이 아닌걸. 부족한 것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장애물이 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안에 타인의 평가와 인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해지고 거절과 무시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전보다 단단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떠나 타지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보는 신기한 경험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아닌 ‘플랫메이트’라는 새로운 형태로 한집에서 살아가며 서로 맞춰가고 적응했던 시간들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경험이었다. 물론 서러울 때도 있었다. 아파도 내가 내 몸을 돌봐서 밥을 해 먹어야 하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오더라도 엄마를 의지했듯이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었다.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각자도생 하느라 저마다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더라도 힘든 것을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스파르타(?) 훈련을 통해 아픈 만큼 성장했고 의존적인 사람에서 점차 독립적인 인간으로 변화되어 왔다.         




마냥 밉고 싫었던 내향적인 나의 성격도 어느 순간, 전보다 받아들이게 되었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끌어안게 되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날짜는 기억은 안 나지만, 약속이 없어서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가했던 그날.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고 방 안에서 유튜브를 보며 깔깔대고 있었던가. 그냥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내가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외롭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았다. 평온하고 잔잔하며 홀로 있는 시간을 오롯이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내향적인 인간은 에너지가 안으로 향하며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동안 외부에만 시선을 빼앗기고 자꾸 외부로 에너지를 쓰려고 노력하니, 가뜩이나 에너지가 없는데 내 안에 있는 것들은 쉽게 고갈되고 말았다. 거기에 비교까지. 스스로 나 자신을 힘들고 아프게 만들었다.     


한국에선 관계에 힘을 많이 쏟았고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에 나와서 살아보니 중요하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됐다. 그보단 내가 더 중요했다. 당연한 건데,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인정과 평가에 연연하다 보니 관계가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사람에게 받는 애정과 관심에 늘 목이 말라 있었다. 항상 관심을 외부로 향하다 보니 내 안에 중심을 잃고 오랜 시간 의존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내향적 워홀러로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사귀진 못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나에겐 휴식이 되었다.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그동안 꽉 움켜쥐고 있던 관계의 힘을 빼자, 스트레스가 줄었고 외부로 향했던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향적인 나를 사랑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는 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분명한 건,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통해 시작할 수 있었고 변화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뉴질랜드 첫독립기를 지나며 앞으로도 나의 독립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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