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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아빠가 자살을 시도했다

의식 없는 아빠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아빠에 대해,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 정리해야 했다고 생각한 출발점은 아버지의 자살 시도였다.


코로나19 창궐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며 일하던 어느날 퇴근길,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와 연락이 안 되니 집에 어서 가보라는 말이었다. 얼마 전부터 아빠에게서 느껴지던 불길한 기운이 있었기에 지체없이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빠는 자신의 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있었고,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이 노란 빛이었다.


지체없이 맥박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예비군 훈련에서 배웠던 걸 생각하며 가슴을 압박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 그리고 입으로는 분노 섞인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이제 하다하다 약까지 먹는구나.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에서 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지는 않았구나" 생각하며, 바로 119에 전화했다. 아마도 약을 드신 것 같다고. 의식이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가뜩이나 회사에서도 좋지 않은 일로 만신창이 같은 정신이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곧이어 도착한 119 대원분들이 아빠의 의식을 살피고,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키는 작지만 큰 체구로 인해 구급대원들이 모두 달라붙었지만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난생 처음 구급차에 올라타 이곳저곳을 헤맷다. 코로나19 때문에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었다. 네 곳의 대학병원에 연락해서 겨우 찾아갔지만 퇴짜를 맞았고, 결국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모 지역에 있는 병원까지 옮겨가야 했다. 응급환자였다면 아마도 사망했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길에서 허비했다.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각종 검사를 했고, 위 세척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간 모아뒀던 수면제를 한꺼번에 복용한 것이었다. 그걸 다 먹으면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요즘 수면제는 많이 먹어도 죽지는 않는단다.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가족들과 연락을 취했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그리고 저 인간은 왜 저모양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의료진의 호출을 받고, 더 취할 조치는 없으니 모시고 돌아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 때가 새벽 1-2시 안팎이었다. 정신도 혼미하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되고, 뭣보다 약기운 때문에 걷지도 못하는 아빠를 휠체어에 태우고 겨우 택시를 잡아 탔다.


집앞에 도착해 거구의 몸을 낑낑거리며 질질 끌고 계단을 올랐다. 절로 욕이 나왔다. 자식에게 이런 꼴을 보이는 부모가 있을까.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라 집에 끌어다 놓으니, 아빠가 오줌을 지렸다.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 바지를 벗겨 몸을 닦아내고, 소변에 젖은 바지는 비닐 봉지에 넣어 묶고 그냥 이불을 덮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빠의 자살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한번은 집에서 번개탄을 피운 적이 있었다. 방문을 닫고, 창문에 테이프를 붙인 뒤 번개탄을 피웠다.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매캐한 냄새로 가득한 방에서 번개탄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함께 소리지르다 울고, 그리고 아빠를 부등켜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노의 감정보다는, 큰 일이 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자살 시도에서는 낙심과, 절망, 그리고 분노가 나를 뒤덮었다. 내 인생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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