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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희귀에에 걸린 아빠

아빠에 대한 나의 마음이 처음부터 분노였거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아빠에게 희귀병이 발견됐다. '후종인대골화증'이라고 하는, 척추뼈를 지지해 주는 인대가 석회화 되는 병이다. 생사를 다투는 질병은 아니지만, 신경을 마비시켜 목 아래 신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음주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했다. 이때가 어떻게 보면 내가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결단한 중요한 계기였다.


아빠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목뼈 2-3개를 인공뼈로 치환해야 하는 고난이도 수술이었다. 수술 시간도 적잖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의로 이름난 그 의사가 마치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만한 환자를 만났다는 듯 "목이 짧아 고생했지만, 수술은 아주 잘 마쳤다"며 농담조로 말했고, 우리는 모두 안도했다.


그 때 나는 순수했다. 폭력적이고, 술도 많이 드셨던 아빠였지만, 그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매일 병원에서 아빠를 돌봤고, 병원 근처 기도실에서 수술과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도 애썼다.


나는 그 병을 연구자처럼 조사했다. 논문을 찾아 읽기도 했고, 최선의 치료법이 맞을지에 대해서도 의료진만큼이나 고민했다. 그리고 정말 많이 기도했다. 마치 동굴처럼 느껴졌던 그 기도실에서 몇 시간이나 아빠를 위해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병치레로 오히려 부자간의 정이 돈독해 지는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돌아보면 그때 이후로 아빠는 나를 든든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아빠에 대한 실망이 더 커진 계기였기도 하다. 술과 거리를 두고 사시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몸을 회복하면서부터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욱하는 성격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와 다투고, 나를 괴롭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큰병치레를 하고 생각과 생활이 크게 변한다고 하는데, 아빤 아니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땐 그 이유를 생각하기보다는, 실망감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약 7년 뒤, 또 한 번의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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