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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술취해 길에서 쓰러진 아빠를 응급실에서 마주했을 때

아빠 문제로 병원에 갔던 게 '수면제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느날 퇴근해 아내,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막 마친 뒤였을 때였다. 아빠에게 전화가 와서 받으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119 대원입니다. OOO씨 아드님이시죠? 아버지가 지금 길에 쓰러져 피를 많이 흘리셨어요. OO병원으로 와주세요."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해당 병원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인거야..."라고 되뇌이며,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전화통화를 했던 구급대원에게 상황 설명을 들으니, 찻길에 쓰러져 피흘리고 있는 아빠를 행인들이 발견해 신고한 거였다. 피를 많이 흘려 걱정되는 상황인데, 다행히 의식은 있다고 했다.


응급실에 들어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아빠를 만났다. 만취해서 본인이 왜 쓰러졌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왜 자기가 여기에 있냐며 어서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의료진과도 실랑이를 했던 것 같다. 


일단 찢어진 머리를 봉합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머릿속 출혈은 없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엑스레이와 CT, 피검사를 하고 의사와의 면담을 기다렸다. 의료진은 다행히 머릿속 출혈 등의 큰 문제는 보이지 않다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정신과 진료를 제안했다. 알코올 중독이나 의존,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해당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적은 없지만, 암 수술을 두 번이나 겪고도 술을 끊지 못하고 만취해 이런 상황이 벌어질 정도라면.. 알코올 중독이라 해도 수긍할 만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그때 응급실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간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빠를 부축해 환복시키던 것, 소변기에 소변을 대 드리면서 느낀 불편한 감정.. 그리고 정신과 당직의가 찾아왔을 때 내 이야기를 듣고 해 준 말이었다.


"댁으로 돌아가신 뒤에 꼭 외래 진료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아드님이 참 힘드시겠어요."


아빠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는 말보다, 내가 힘들겠다는 그 말이 와닿았다. 위로가 됐다기보다는, "그래 내가 진짜 힘든 게 맞는 거야. 이런 아빠가 있다는 게, 이런 아빠를 매번 케어해야 한다는 게 힘든 게 맞는 거야."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우리 아빠는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그런 마음에 속으로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이후 집으로 돌아왔고, 아빠가 피흘리며 쓰러져 있었다는 장소를 찾아갔다.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바로 앞 쌀국수 가게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CCTV 영상을 살펴봤다.


녹화된 화면 속에는 비틀거리며 서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어느 순간,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져 도로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리곤 움직이지 않았다. 차량이 지나다니는 길이었고, 어두운 밤이었기에 자칫하면 차에 치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어느 용감한 한 분이 달려오는 차들를 막았다. 그리고 119에 신고한 것이었다.


나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119 상황실에 연락해 신고하신 분을 찾았고, 그분께 감사의 인사와 소정의 성의 표시를 했다. 그래도 아빠가 죽지 않았고, 그 분 덕분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용기를 내어 주신 그 분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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