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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아빠가 엄마를 흉기로 위협했다

부모가 내게 짐처럼 느껴진 순간

이 시리즈는 시간 순서로 벌어진 일을 정리한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아빠와의 관계와, 나의 삶에 대해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아빠의 자살 시도)에서 과거로 회귀한 뒤, 다시 최근으로 돌아오는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시간 순으로 말하자면 희귀병-암수술-자살시도 그리고 이번 이야기로 이어진다.


흉기 위협 사건은, 이 글을 쓰는 시점(2024년 4월)에서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다. 아빠는 물론 엄마에게까지 환멸감을 느끼게 된 사건이다.


여느 때처럼 엄마에게 SOS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엄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빠가 칼을 들고 본인을 위협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경찰이 와 있으니, 와서 자신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 달라고 했다.


'결국 이렇게 끝을 보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경찰이 와 있었고, 다행히 엄마가 칼에 찔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칼을 들고 위협하는 아빠를 본인이 밀어냈고 칼을 빼았은 뒤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 아빠는 경찰들에게 화를 내며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오히려 아내가 본인을 밀어 쓰러진 상황이라고 항변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고 힘을 빼서 쓰러질 것 같다며 당장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조사를 받기 위해 인근 지구대로 갔다.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엄마에게 특별한 건강상의 이상은 없었다. 갑자기 놀란 상황에서 순식간에 큰 힘을 써서 기력이 빠져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 두 사람을 함께 있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누나 집으로 보내드리고, 나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내게 아빠를 모시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한사코 본인의 혐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기억도 오락가락하고, 말도 횡설수설하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치매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절대 두 분만 있게 하지 말고 빨리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가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경찰의 말과 머리가 깨져서 병원에 갔을 때 만난 정신과 의사의 말이 같은 맥락이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사건의 발단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빠가 본인이 좋아하는 생선인 양미리를 꽤 많이 사놓으셨고, 그걸 본 엄마는 그 많은 생선을 손질하고 요리할 생각에 화가 나셨던 것 같다. 평소 아빠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아빠에게 최소한의 의무만 하시려는 편이었다. 몇 마디 불평을 하자 아빠는 불처럼 화를 냈고, 큰 싸움으로 번졌다. 늘 그런 식이었다.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해 큰소리가 오가고, 물건이 깨지고, 그랬다.


하지만 이번처럼 흉기 난동까지 간 적은 없었다. 더이상 두 분이 함께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빠 혼자 따로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도 더 이상 함께 살기를 원치 않았고, 아빠에게는 이제 나가서 혼자 사셔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도 수긍했다.


그런데 집이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여든이 가까운 남자 노인이 세입자라고 하니, 대부분의 집주인이 거절했다. 차선책으로 양로원을 알아보기도 했다. 아빠에게도 말씀 드리니, 가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본인도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 상황이 됐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금 움츠러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순히 병원에 가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아빠를 모시고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설문조사 같은 문진표를 작성한 뒤 의사를 만나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의사는 아빠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검사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치매보다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약을 복용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아빠의 복용약이 몇 개 더 늘었다.


이 일로 나는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환멸감을 느꼈다. 나를 향한 엄마의 불같은 화 때문이었다.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와중에 엄마는 다리를 다쳤고, 내가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택시 기사에게 큰 소리로 불만을 표출했다. 본인이 내리려는 곳을 지나쳤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다. 그냥 빨리 세워달라고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 모습이 민망하고 불쾌해 엄마에게 한소리 하자, 엄마는 도리어 내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뭐지?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그 순간 나는 엄마에게도 환멸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남편과의 불화에 다리까지 다쳐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은 엄마 입장에서는 택시 기사나 나에게 충분히 그렇게 화풀이를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걸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주 많이 실망스럽다.


그때부터 부모 모두가 내게 짐처럼 다가왔다. 나이 40이 넘고, 나 역시 가족을 꾸리고 있는 상황에 이렇게 계속 부모의 다툼을 중재하고, 뒷감당을 하는 게 맞는 일일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럼 부모와 절연하고 관심을 끄고 사는 게 답일까? 하지만 모질지 못한 성격에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가 커도 부모를 케어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많은 상처를 준 부모를 케어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답답함이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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