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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괜찮아

by 별빛바람

https://brunch.co.kr/@pilgrim6/287



길을 걷다 보면 "무언가" 눈에 띄는 장면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사물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의 지나가는 움직임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 나이 지긋한 선배님들 같은 경우는 이쁜 꽃이나 나무 혹은 구름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고 조심히 카메라 어플을 켜곤 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늘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회사에서 일하던 선배님들도 그러셨고요. 그러나 그 사진에 대해 애착을 갖는 분들은 자주 보질 못했습니다. 늘 똑같은 패턴이지만, 사진을 찍고 - 며칠 지나서 "용량" 문제 때문에 사진을 지워버리곤 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면 그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며, 스마트폰의 배경화면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그러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왜 그런 걸까요?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무언가 특별한 걸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곤 합니다. 사람을 찍을 땐 전신이 나와야 하고, 풍경이 나와야 하며, 구도도 딱 맞아야 하고, 삐뚤어져서도 안되고, 흔들려서도 안되며...... 생각만 해도 복잡한 법칙들이 꽉 짜여 있는데, 그 많은 것들을 다 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멋있는 풍경과 전신이 보이는 사진, 그리고 딱 알맞은 구도, 흔들리지 않는 사진. 거기에 색감까지 맞아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다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문 사진작가들 조차 그 모든 것들 중 일부만 선택해서 사진을 찍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저 같은 경우는 보통 "단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곤 합니다. 줌렌즈가 한 개 있긴 하지만 들고 다니기 무겁기도 하고, 어느 시점에 "어떤" 화각을 찍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릅니다. 50mm가 표준이고, 그 50mm는 한쪽 눈을 감았을 때의 화각이며, 35mm는 광각이며, 50mm 이상은 망원이라는 법칙. 인물을 찍을 땐 망원을 써야 하며, 풍경을 찍을 땐 광각이 필요하다는 이런 복잡한 원칙을 가지고 줌렌즈를 사용하다 보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속 편하게 35mm나 50mm 중 아무거나 하나를 들고 다니곤 합니다. 그나마 "광각"은 왜곡이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왜곡"이 어떻게 되는지 보다는 해당 프레임 안에서 내가 담아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인지 딱 나눠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사진들을 찍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 눈은 24시간 동안 "우리가 관찰"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바라보았을 그 순간에 대해서 인지를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바라보는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길을 걷다가, 우연찮게 바라보다가 "인상 깊은"것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항상 특별할 필요는 없지요. 그저 우리가 바라보는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우리의 눈"에 인상 깊은 것들이 기억에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상 깊은 것들 중에서 프레임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을 찍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이 "특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 혹은 기억에 남는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사진으로 남기면 됩니다. 다소 부족한 사진인 이후 조금씩 편집을 해 나가면서 그 사진을 채워 나가면 됩니다.


한 가지 사진의 예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이 사진은 어딘지 모르게 살짝 삐뚤게 찍은 사진입니다. 아무래도 제 어깨가 살짝 삐뚤어져 있는지 어딘지 모르게 살짝 기울어진 느낌이죠. 그리고 이 날은 마침 비가 내린 직후라 그런지 살짝 어둡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진은 약간의 보정을 통해 사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정 한 건 딱 두 가지입니다. 구도를 살짝 바꾸고, 색감을 조금 더 옅게 만들었지요. 어린 시절부터 늘 자리를 지키던 짜장 떡볶이집의 아련한 모습은 오히려 진한 색감보다 "옅은 색감"이 더 잘 어울릴 거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기울어진 모습에서 수평만 조금 조정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이미 스마트폰 기본 편집 기능으로도 충분히 구성할 수 있으니 "힘들게 선택한" 사진을 아무 생각 없이 지우기보다는, 그 당시 찍었던 느낌을 살려가며 그 당시의 의미를 한 번 더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제가 찍는 사진들은 전부 "구도"나 "소재"가 다소 진부하거나 불편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Leica Korea에서 1시간짜리 클래스를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편집한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강사님들을 보며 그리 잘 찍은 사진은 아니란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어차피 제 사진은 부족하단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진리"속에서 "내가 선택"한 소재라는 것 역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사진 속에서 남겨진 이야기와 생각들은 나 혼자 혹은 같이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만 기억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그러니 사진이 다소 흔들리고, 구도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진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진을 찍는 여러분들의 생각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낡은 간판을 찍을 때, 낡은 시장의 모습을 찍을 때 그 의미는 분명 "내가 바라보는" 생각이 잘 표현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표현이 다소 흔들리고 거칠게 표현되긴 하겠지만, 그 이미지조차도 "내가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고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급하게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분명 내 눈을 멈추게 한 그 순간이 아닐까요?


며칠 전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눈에 띄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그 장소는 이미 40년 넘게 지나가던 장소라 크게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분명 그 순간만큼은 제 눈길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었지요. 그리고 그 순간의 사진에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고민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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