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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1화

by 별빛바람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음악 소리.
왠지 콘서트 현장인 듯 몸을 흔들고 싶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출근을 하느라 지친 사람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오늘만큼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고 싶었다. 지하철 밖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와 철길을 따라 달리며 들리는 마찰음. 웅성대는 소리와 사람들의 숨소리들. 오늘만큼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없었다면, 이 모든 소음을 다 들어야 할 판이었다. 단지 10분 차이로 종점에서 한 정거장 다음 역에서 출발하지만 이미 좌석에는 사람들로 꽉 차있고, 고개를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다행히 지하철역에 들어가기 전 미리 설정해두었던 음악이 흘러나오며, 주위의 소음을 차단해 주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오늘만큼은 유튜브를 보며 웃으며 출근을 하고 싶었다. 아침에 듣게 될 팀장의 잔소리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에서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5분짜리 짤막한 동영상을 보며 키득이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을 들 여유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나마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주위의 소리와 움직임에서 조금이나마 해방을 찾으려는 듯 각자 몸부림치며 어느 한곳에 집중하려는 모습은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떨어진 일이 아니면 무관심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미덕이듯,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어폰 밖의 음악에 대해서도 아무리 촌스럽다 하더라도 이 날만큼은 서로 공감해주고 묵인해 준다. 가끔 주위에서 용감하게 유튜브나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 동영상이 재밌을 지라도 멀리서 힐긋 거리며 바라보는 것 까지는 용서해 주는 미덕.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모두가 다 관대한 사람들일 뿐이다. 각자의 갈 길은 다르더라도 목적은 하나일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순간.


“출근”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고민을 하든. 다들 귀에 꽂혀있는 무선 이어폰 하나의 몸을 떠 맞긴다. 어떤 음악이 나올지 중요하지 않다. 때론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를 이끌기도 하지만, 주로 내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는 슬픈 발라드. 아마도 회사를 가기 싫은 내 감정이 이입돼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인다. 누군가 정신을 잃고 바라보는 재미있는 유튜브 장면. 분명 언젠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화면만 보이는데도 이게 무슨 내용인지 참 신기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잠들기 전 잠깐 눌러보았던 유튜브 화면에 키득거리다 잠들었던 그 장면이었던가? 아니면 근무시간 중 잠깐 숨 돌리고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 틀었던 유튜브 화면이었던가? 어떤 화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면이 보여주는 장면이 상큼한 사이다처럼 만원 지하철의 답답함을 해소해준다.

언제나 똑같이 하루의 첫 시작은 답답함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답답함 만큼은 저 멀리 보이는 화면 속에서, 그리고 언밸런스한 내 귀의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속에서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오늘 하루 격게 될 예측할만한 미래를 조금이나마 잊게 만들어준다.


예측할만한 미래.

난 회사에서 잘 나가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그런 직장인일 뿐이다. 후배들에게 치이고, 선배들에게 눌리며, 동기들보다 한참 뒤처진 직장인일 뿐이다. 그런 나 자신이 아침에 출근하는 동안 생각하게 될 많은 일들. 나보다 한참 앞을 달려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야 할까? 아니면 한참 저 멀리 달려가는 동기들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에 띄게 많이 변화하지만, 단지 나만 이 세상에서 변화 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도 누군가 격려를 해준다. 귓속에 흐르는 음악.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작은 싸구려 무선 이어폰에서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그 음악. 언제 선곡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랜덤으로 흐르게 만든 그 음악들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으며 잠시 미소를 짓는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일. 수많은 경쟁 속에서 정무적 감각이 없어 뒤처질 수밖에 없는 나의 성향을 뭐라 할 수는 없겠지. 단지, 오늘 하루도 버틸 수 있게 힘이 되어준 아침의 햇살에 감사하고, 나를 보고 항상 웃어주는 나의 두 딸에게 감사해야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도 직장인이 될 수 있게 힘을 나 준 것은 주위의 작은 모든 것들이니까. 그러니 힘을 내자. 아무리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난 오늘 하루 힘을 내는 내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그리고… 늘 나에게 갑작스럽게 행복한 음악을 건네주는 무선 이어폰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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