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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by 별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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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부비동염 수술을 위해 입원을 기다린다. 수술 후 약 3일간 입원이라 그리 큰 수술은 아니지만, 짐을 챙기다 보니 작은 여행용 캐리어 한 가득이다.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성격이 아닌지라, E-book 단말기에 책 몇 권을 다운로드한다. 과연 이번 입원 기간 동안 책을 몇 권이나 읽을까 잠깐 고민해 보지만, 그래도 3권을 읽어보자는 목표로 다운로드한다. 당연히 노트북도 챙기고, 태블릿 PC도 하나 챙긴다. 개수는 줄어들었지만, 들고 가는 물건들은 늘 비슷한 것 같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부비동염 수술을 해야 한다 했지만, 수술 날짜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코로나가 좀 완화되고 나니, 수술 일정을 잡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동안 숨쉬기 힘들고, 냄새라는 걸 맡지 못하였으니 정말 사소한 것 하나조차 누려보지 못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향기로운 향수의 향기, 아이가 목욕한 뒤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샴푸의 향기마저도 맡질 못했다. 이젠 수술이 끝나면 숨쉬기도 좀 수월해지고, 세상의 모든 향기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많은 부분을 챙겨갈까 고민했지만, 마음 편하게 이번 입원 기간 동안 책을 읽고 - 고민도 해보고, 글도 써보자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챙긴다. 마침, 문창과 리포트도 있으니 리포트도 마무리한다는 심정으로 노트북을 챙긴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오래전 들고 다니던 유선 이어폰을 하나 챙긴다. 충전하기 귀찮기도 하지만, 유선 이어폰 만의 음질이 그립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유선 이어폰을 노트북에 꼽고 음악을 들으니, 최신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아니지만 경쾌한 음악이 나와 참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회에 다시 아이팟을 들고 다녀볼까 고민을 잠깐 해본다.

우리가 지내오면서 잠시 동안 간과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숨 쉬는 것, 냄새 맡는 것, 보는 것 등등 우리 몸의 일부분이며, 일상의 행동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라도 사라지만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너무나 익숙해졌던 것이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언제부터 부비동염이 왔는지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숨쉬기가 불편했고, 어느 순간부터 냄새를 맡질 못했다. 그냥 일상과 같이 자연스럽게 상실해갔다.

시력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인가? 사진을 찍기 위해 뷰파인더를 지긋이 바라보는데, 초점이 흐릿하게 보였다. 처음에는 카메라 문제인가 싶었다. 하긴, 30년은 더 지난 카메라이니 뷰파인더에 얼룩이 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의 뷰파인더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EVF 방식의 뷰파인더는 디지털 영상이라 선명하게 나와야 하는데 흐릿하게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안과를 찾아가 보니 노안이라 한다. 정확하게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신속하게 초점을 잡는 조리개 기능이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뭐 어찌 설명하건 간에 노안은 노안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찍는 사진마다 초점이 흔들리고, 사진이 흔들리곤 했다. 하지만 선뜻 안경을 바꾸질 못했다. 누진 다초점 렌즈라는 최신 기술의 안경을 구입하면 되는데, 선뜻 안경점에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늘 정신없이 지내다 부비동염 수술을 위해 휴가를 냈다. 어제는 입원 전 PCR 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는데, 10분도 안돼 끝이 나 허무하게 끝냈다. 다행히 업무를 위해 가방 속에는 노트북이 있었는데, 시간 맞춰 Zoom 접속을 하고 - 커피 전문점에서 트리플 샷 블랙을 마시며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입원을 하러 작은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 11시에 병실 배정이라 하여, 11시 좀 넘어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막 타는 순간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3시까지 와서 입원 수속을 하라 한다. 갑자기 생긴 3시간의 여유 때문에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커피 전문점으로 간다. 마침, 잠깐 여유가 있을 때 사진을 찍으려 가져온 Nikon FM2와 Ilford XP2 필름을 가지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본다. 아마 오늘 찍은 사진은 몇 주 후에나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기다림 동안 그동안 읽고자 했던 책도 꺼내 읽어본다. 커피 전문점에서 책을 읽는 게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다. 화이트 노이즈가 집중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난 아직까진 조용한 분위기가 더 집중이 잘 되는 듯하다. 아니면 이것저것 신경 쓰고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책을 10분 정도 읽어보다가, 다시 10분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음악을 다른 것으로 선곡해보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해 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무언가 집중하는데 어색한 게 아닌가 싶다. 늘 기다리기보다, 무언가 나에게 다가오길 바랬던 것 같다.

마침 입원 기간을 통해 다시 한번 기다림을 느껴보고자 한다. 분명 짧으면 짧은 시간이고 길면 긴 시간이 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소설의 도입부를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딸아이와 진행하는 동화의 다음 편을 구상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리포트를 써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참 다양한 일들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나에게 많은 것들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듯하다. 얼마만큼의 글이 쓰일지 모르지만, 짧은 기다림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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