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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Oct 09. 2022

만남, 헤어짐 그리고 인연

그 가난했던 동네에서 더욱 가난했던 집안 덕분이었을까? 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질 못했다. 도시락을 열면 냄새가 너무나 오래되고 색 바랜 김치가 싫어 점심을 굶는 게 일상이었다. 친구들이 싸온 비엔나 소시지나 미니 돈가스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지만, 난 그냥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친구보다는 낡은 컴퓨터의 게임 속 캐릭터가, 그리소 소설 속 캐릭터가, 만화의 캐릭터가 나의 친구였던 건 당연한 일이다.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노트 뒤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써보곤 했지만, 결국 그 내용은 내가 어딘가에서 읽어봤음직한 내용이니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도 하지 않은 글들을 열심히 쌓아두다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이 세상을 구하고자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친구들은 아버지를 잃었지만, 사실 아버지는 악마에게 세뇌를 당한 상태였고 아버지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악마에게 다가서자, 아버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악마와 함께 용암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연하지만 이 이야기는 일본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충분히 봤음직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 이야기들 속에 나만의 캐릭터 이름과 도시 이름들이 섞여 있을 수는 있다. 당연하게도 어느 나라 말도 아닌 이름이, 어느 나라 말도 아닌 명사가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을 즈음이었다.

하지만 난 운이 좋았던 거 같다. 그래서 남들이 다니던 그런 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대학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당연하지만 나처럼 마음속 한편에 아픔은 있지만 언제나 밝을 것만 같은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어주었다. 물론, 나보다 더 행복한 집안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 없이 웃고 떠들던 친구들도 있었다. 난 그런 친구들과 모여 언제나 소주 한잔 하며 내 이야기를 전했다. 물론, 점심을 같이 하진 못했다. 나에겐 점심 값은 사치였으니 말이다.

대학을 합격했을 때 내 부모님은 너무나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주량이 약하셨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다음날 일 하러 나가시지 못할 정도로 술을 드셨다. 너무 기쁘니, 술이 정말 달게 느껴지셨다 했다. 어머니도 너무 기뻐서인지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없는 돈을 모아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고 난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미래가 나에겐 너무 불투명했다. 그래서, 난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잔 생각으로 지내왔다. 다행히, 부모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고민하지 않으셨으니, 어느 정도 나도 효도를 했던 터였다.

군대를 가기보다, 빨리 졸업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학위를 따야 하고 -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 목표를 차근차근 찾아갈 때쯤 그분을 뵙게 된다. 지금의 내 나이 즈음되었을까? 이제 막 상아탑으로 돌아온 앳된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선생님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이야기하셨고, 유창한 영어로 강의를 하셨으나, 내 머릿속에 그 단어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 핵심 요약으로 돌아오는 건 나에게 사치였다. 영문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매진하기보다 대학 때 막 ABCD를 배우던 실력이니 중학생 정도의 실력으로 어려운 수업을 듣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늘 나게에 "공부는 채찍질과 같다."라고 하며 격려를 하셨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부족했던 것일까? 난 학교를 떠나고 다른 목표를 향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군생활을 하며, 그 돈으로 결혼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의 돈은 내가 군 시절 모은 돈과 나의 평생 반려자인 챌리나의 20대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난 취직을 한다. 취직을 하고, 문학과는 다소 멀리 약 12년 동안 제조업의 관리회계 업무를 수행하였다. 당연히 내 머릿속의 꿈이 점점 지워질 즈음이었다.

그때 다시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내가 이제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고, 선생님은 이제 저 멀리 학자로서 길을 충분히 걸어가고 계실 때였다. 난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고작 글이나 쓰고 싶어 하는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직장인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으나, 그 무언가는 아마 카드빚과 대출 고지서밖에 없는 부족한 제자를 근 12년 만에 다시 보았을 때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물론,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너무나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으니 그 길을 갈 거라 이야길 드린다. 나의 길. 선생님의 길. 난 분명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보다, 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던 거 같다. 이젠 스텔라와 첼리나, 그리고 나의 후배들의 길을 위해. 그 인연을 이루기 위해 인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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